장천 1호분 불상예배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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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장천1호분 예불도
집안장천1호분 예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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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에 있는 장천1호분의 고구려 고분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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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에 있는 장천1호분의 고구려 고분 벽화.
내용

고구려가 불교를 공인한 해는 372년(소수림왕 2)이다. 이 해에 당시 북중국의 패자로 군림하던 전진왕(前秦王) 부견(符堅)이 불상·불경과 함께 승려 순도(順道)를 고구려에 보냈다. 그러나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지고, 불교를 믿는 사람이 생긴 시기는 이보다 훨씬 전이다. 실제로 4세기 전반 동진(東晋)의 고승 지둔(支遁)이 고구려의 도인(道人)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안악3호분 벽화에서도 불교와 관련된 연꽃무늬를 확인할 수 있다. 안악3호분은 357년(고국원왕 27)에 축조되었는데 이 고분에는 연화문이나 화염문 등 불교와 관련된 장식적 요소가 많이 남아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불상이 직접 그려진 것은 중국 지린성 지안에 있는 장천1호분이다. 이 고분은 1970년에 수리되었고 1980년경에 논문으로 소개되었다. 장천1호분의 전실 천정 부분 고임면에는 불상과 보살상·비천·공양자상·연화·연화화생 등이 묘사되어 있어 불교적 색채가 농후하게 남아있다. 장천 1호분은 고분벽화 중에서 연화문이 가장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묘주인으로 생각되는 인물이 불상을 향해 예배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동쪽 천정에 가부좌의 불상을 둘러싼 인물들을 비롯하여 나머지 천정 부분에도 보살, 비천 그리고 연화화생과 같은 불교적 인물과 소재로 가득 차 있다. 장천1호분의 불상 예배도는 이제까지 확인된 고구려 고분벽화 중에서 불상이 표현된 유일한 사례이다. 수인은 선정인(禪定印)이고 높은 방형 대좌 위에 앉아 있으며 대좌 양쪽에는 사자가 있어 중국에서 4세기 내지 5세기 초에 유행한 불좌상 형식과 그 계보를 같이한다. 통견의 법의 주름이 좌우로 이어져 정돈되고 광배의 화염문 형태는 대략 4세기 말 내지 5세기 전반의 중국 불좌상들과 비교된다. 천장 양측 벽에는 연화대좌 위에 서 있는 보살상이 4구씩 있는데 부분적으로 파손이 심하나 영락 장식과 양쪽으로 뻗친 천의 자락은 5세기에 유행한 북위의 보살입상 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중앙아시아의 불상과도 연관성을 갖는다. 불교 경전이 번역되어 정토사상에 대한 교리의 이해가 깊어지고 불교신앙의 체계가 구축 됨에 따라 천상의 불상 표현은 이후 고분 미술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러나 연화나 비천 등은 장식적인 효과나 사후 세계의 장엄을 묘사하기 위한 용도로 계속 존재하게 된다.

장천1호분 불상의 얼굴은 간다라식 불상의 특징인 수염을 지닌 모습이다. 이마 위에 호상(毫相)이 있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얼굴은 더 이상 서역인의 특징을 남기지 않고 있다. 수인은 선정인이다. 선정인은 손바닥을 편 채로 왼손을 배꼽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손바닥을 편 오른손을 얹어 두 엄지손가락을 맞댄 손의 자세를 말한다. 석가가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취한 첫 수인으로 삼매인(三昧印)이라고도 한다. 이 수인은 초기 불상의 특징적인 수인이다. 장천1호분 불상은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있다. 이 자세는 두 다리를 꼬고 앉되, 두 발바닥이 위로 드러나게 한 자세이다. 왼발을 오른쪽 다리 위에 얹은 다음 오른발을 밖에서 왼쪽 다리 위에 얹은 것을 길상좌(吉祥坐)라 하며, 좌우의 위치를 바꾼 자세를 항마좌(降魔坐)라 한다. 장천1호분 불상 벽화는 다리 부분이 마모되어 있어 길상좌를 취하였는지 항마좌를 취하였는지 구분할 수는 없다. 이 불상은 두 어깨를 모두 가리는 통견대의를 입고 있다. 초기 불상은 거의 예외 없이 두 어깨를 모두 가리는 통견대의를 입은 모습으로 표현된다. 선정인과 함께 벽화의 불상이 이른 시기의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다만 중대 정면에 초기의 단순한 박산향로 모양의 향로가 새겨져 있다. 대좌 하대 양 측면에는 호법 사자가 표현되어 있다. 입을 크게 벌리고 혀를 길게 내민 모습이 개를 연상시킬 정도로 고졸하다. 중국의 북위 석굴 사원에서 유사한 표현을 찾을 수 있다. 불상의 광배는 불꽃무늬로 장식되어 있고 그 뒤에 자색 띠무늬로 장식된 녹색의 막과 같은 것이 있다. 이것은 성스러운 나무를 표현한 것인데 4세기 이전 제작된 중앙아시아의 석굴사원 벽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나무가 있다. 불상 예배도 측면의 천장 벽에는 보살상들이 그려져 있다. 이 보살상들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확인되는 유일한 보살상들이다. 보살상들은 대부분 수염을 길렀으며, 눈이 둥글고 코가 뚜렷하고 얼굴선이 깔끔하다. 중앙아시아 불교미술과의 관련성을 엿보게 한다. 보살은 넓은 천의 자락을 어깨에서부터 걸쳐 몸에 두르고 있다. 보관과 함께 보살의 장식물 중 하나인 영락이 보살의 배 앞에서 ‘X’ 자 모양으로 교차하고 있다. 보살의 두광 내부는 번갈아 가며 색을 바꾸어 칠했는데 다양한 방법으로 화면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변화상은 보살이 올라서 있는 연화대에서도 확인된다. 보살들이 서 있는 연화대는 앙련과 복련이 섞여 있으며 색채 또한 번갈아 칠해 변화감을 부여해주고 있다.

의의와 평가

장천1호분은 국내성 지역을 중심으로 불교문화가 확산하면서 고구려인의 내세관에 어떠한 변화가 초래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또한, 5세기 전반 고구려와 중국 북조, 그리고 아시아 내륙의 유목제국인 유연 사이에 어떤 식의 문물교류가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벽화에 다양하고 빈번하게 나타나는 서역 문화적 요소는 고구려가 북위를 통해서 서역의 문물을 접했을 뿐만 아니라 유연을 통로로 해서 서역과 직접 교류하기도 했다는 점을 방증해준다. 간다라 미술의 체취가 여전히 남아 있는 장천1호분 벽화의 불상 예배도와 보살도는 서역에서 고구려로 불교문화가 직접 전해졌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거자료이다. 아울러 5세기 전반에 국내성 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던 불교신앙과 문화의 전파 및 정착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회화로 된 생생한 기록이다.

참고문헌

「고구려 장천1호분 연구」(전호태, 『고구려발해연구』52, 2015)
「5세기 고구려 고분벽화의 불교적 요소와 그 연원」(김진순, 『미술사학연구』258, 2008)
「장천1호분 예불도벽화의 불상양식 고찰」(이정효·최덕경, 『석당논총』38, 2007)
「장천1호분 불상예배도벽화와 불상의 시원문제」(문명대, 『선사와 고대』1, 1991)
「集安長川一號壁畵墓」(吉林省文物工作隊 集安縣文物保管所, 『東北考古與歷史』1,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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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정성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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