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여항산(艅航山) 중턱에 자리한 성전암은 조선의 제16대 왕인 인조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사찰의 전언(傳言)에 의하면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능양군(綾陽君) 시절에 외갓집 인근의 성전암에 머물며 100일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현재 성전암에는 ‘인조대왕지위(仁祖大王之位)’라는 위패가 봉안되어있고, 인조대왕각이 있다. 성전암의 목조여래좌상은 비교적 작은 크기의 불상으로 조선 후기인 1644년(인조 22)에 제작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폐허로 변한 조선의 사찰은 17세기에 들어와 대부분이 재건되었는데 이 시기에 많은 수의 불상이 전국적으로 조성되었다. 이 목조여래좌상 역시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졌다.
인조 재위 기간에 조성된 성전암 목조여래좌상은 소형이지만 신체비율이 알맞고 조각수법이 우수한 불상이다. 육계가 드러나 있지 않은 머리에 나발을 하고 있는데 불상의 머리 위에는 정상계주가 있으며 그 앞쪽에는 반달형의 중앙계주가 있다. 고개는 앞으로 살짝 숙이고 있고 상호는 방형에 가까운 타원형이다. 양손은 별도로 제작해 손목에 끼워 넣었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오른손은 손바닥이 밖으로 보이게 한 채 어깨까지 올리고 있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한 채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다. 수인은 아미타불의 아홉 가지 수인 가운데 하품하생의 손 모양을 취하고 있다. 불상은 두꺼운 통견 형태의 법의를 입고 있으며 옷주름을 유려하게 조각하였다. 다리 사이에서 부채처럼 퍼져나가는 옷주름과 왼쪽 다리를 넘어 아래로 흘러내려가는 옷주름은 그 흐름이 자연스럽다. 다리의 폭이 넓고 비교적 높게 조각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안정감과 당당한 느낌을 준다.
이 불상은 복장유물을 통해 제작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