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흠덕묘지는 중국 낙양(洛陽)에서 출토되었다. 묘지명은 손자 사위인 해동(海東) 서찰(徐察)이 작성하였다. 묘지에는 고흠덕의 가계(家系)와 이력에 대해서 나온다. 특히 발해인 출자 의식과 고구려 유민 2~3세대로 아들 고원망(高遠望)과 함께 군사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고흠덕은 당나라에서 677년에 태어났고, 733년에 57세로 사망하였다. 묘지에는 고흠덕이 발해인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국을 그 출신지역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관직은 도성부 과의(陶城府果毅), 절충(折衝), 낭장(郞將), 중랑(中郞), 이솔(二率), 영원장군(寧遠將軍) 겸 유주부사절도지평로군사(幽州副節度知平盧軍事), 우무위장군(右武衛將軍) 등을 역임했다. 또한 아들인 고원망의 묘지에 보면, 건안주도독(建安州都督)을 역임한 것이 확인된다.
고흠덕 일가는 증조인 고원(高瑗)부터 고구려의 건안주도독(建安州都督)을 대대로 세습하였다. 그런데 고흠덕의 부친인 고천(高千)부터 당의 관직을 가졌고, 고흠덕이 부친의 공으로 당으로부터 관직을 받은 것으로 보아 고천 때 당으로 이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흠덕 일가는 당으로 이주한 이후 하북(河北)과 요서(遼西) 지역에서 군사활동에 종사했다. 군사활동의 주요 대상에는 돌궐, 거란, 말갈뿐만 아니라 발해도 포함되었다. 고흠덕은 죽기 전까지 변경 군사 업무에 종사하였고, 당시 당나라의 동북 변경 최전선(最戰線)이었던 유성군(柳城郡: 현재 중국 조양)의 공사(公舍)에서 생을 마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