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숙은 해방 이후 『여사시집』·『일상의 시계소리』·『경의선 보통열차』 등을 저술한 시인이다. 1947년 『문예신보』에 「가을」을 발표, 195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원정」이 당선되었다. 그녀의 초기시는 감상성 짙은 여성시인들의 정서를 답습하지 않고, 전쟁이 있었지만 새롭게 재건될 믿음을 놓지 않는 강인한 생명 의지를 볼 수 있다. 『경의선 보통열차』 등 후기 시집에서는 개인의 생체험을 추억하면서는 역사 흐름에 놓인 개인들의 삶의 명암을 그려놓는다. 홍윤숙은 1950년대 여성시의 위상을 강화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호는 여사(麗史)이다. 1925년 8월 19일 황해도 연백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로 이주하여 동덕여자사범학교와 경성여자사범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수학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중퇴하였다. 1947년 『문예신보』에 「가을」을 발표하였고, 195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원정(園丁)」이 당선되었다.
1962년 첫 시집 『여사시집』은 부산 피난 당시 스승이 지어준 여사(麗史)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초기시들은 한국전쟁의 역사현실에서 시인의 의지를 최대한 발휘하여 전쟁의 폐허를 두고 쓴 것이다. 다수의 여성시인들에게서 보이는 감상적인 정서를 답습하지 않았으며 시인의 의지를 살려낸다. 비록 전쟁이 있었지만 새롭게 재건될 믿음을 놓지 않는 강인한 생명의지를 볼 수 있다. 그의 시적 세계는 역사의 질곡을 꽃과 나무에 비유한다. 어떤 시련이 있더라도 이겨내고 반드시 꽃과 잎을 피우는 나무처럼 내면의 생명력을 지속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1987년 『나의 삶 나의 문학』에서 시인은 “결국 내가 시를 쓰는 것은 그 숱한 현실의 비시적 불행의식, 결핍감, 고독과 같은 고통들을 극복하기 위해서였으며 시를 쓰는 작업을 통해 무의미하고 허망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라고 밝혔다. 특히 시인은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에 크게 영향을 받고 역사의식을 반영한 시를 쓰게 된다.
여성시인으로서의 삶의 회한은 어머니의 생체험과 관련하여 어린 시절부터 크게 자리잡았다. 여성의 나이듦에 대한 성찰이 담긴 「장식론」 연작시에서 늙어가는 쓸쓸함과, 열정과 꿈이 사라지며, 인간의 관계가 변화하면서, 드디어 장식을 벗어나는 과정까지 묘사한다. 젊음의 상실과 외모의 변화 못지않게 여성은 나이를 먹으며 절대 고독 속에서 충만한 자기 내면과 만나게 됨을 표현한다. 이후 『일상의 시계소리』와 『타관의 햇살』, 『하지제』 등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감과 그 개별적인 존재들의 실존에 대한 사유로 들어선다.
3·1만세운동으로 고통을 겪다 돌아가신 조부, 파산한 가문을 운명으로 알고 가족을 책임지며 가장이 되어야 하였던 아버지, 2차대전, 태평양전쟁, 또 한국전쟁으로 청춘의 꽃이 어디 피었는지 몰랐던 전쟁시절을 통과한 시인에게 존재한다는 것은 상처투성이 그 자체였다.
『경의선 보통열차』 등 후기시집으로 오면 개인의 생체험을 추억하는 작품 속에서 역사 흐름에 놓인 사소한 개인들의 삶의 명암을 그려놓는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대비해둔 역사의 물줄기 아래 선을 행하고도 비참한 현실에 놓였던 평범한 사람들을 시적 화자로 호출해 놓고 그들만의 역사를 써낸 것이다. 김명순, 노천명, 모윤숙으로 이어지는 여성 시인의 계보에서 1950년대 여성시의 위상을 강화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1970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19841986년 한국여류문학인 회장, 19901992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75년 한국시인협회상을 시작으로 하여 1985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3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1994년 보관문화훈장, 1995년 서울시 문화상과 제4회 공초문학상, 199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2012년 제4회 구상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