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유곽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조성된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업소 또는 그 집결지를 일컫는 말이다. 본래 17세기 초반,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공창제에 법적 근거를 두고 국가권력의 허가를 받아 성매매 영업을 하는 집결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일본의 정치력이 미쳤던 모든 지역에 이식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876년 조선이 개항된 직후부터 부산과 원산, 인천의 개항장에 일본인 유곽 업자와 창기들이 나타났다. 해방 이후 공창제는 폐지되었지만 공공연한 사창 영업과 국가권력의 묵인은 여전히 남아 탈식민의 과제가 되었다.
정의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조성된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업소 또는 그 집결지를 일컫는 말.
개설
연원 및 변천
설립 초기의 유곽은 부유한 상인이나 권력자를 상대로 유녀들이 예능을 선보이고 유흥을 즐기는 공간이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유곽의 수가 늘어나고 대중화되면서 일반 서민이 주요한 고객층이 되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성 판매 여성의 등록과 성병 검진, 거주 제한을 중심으로 한 근대 공창제가 시행되면서 에도시대의 유곽은 근대 일본의 '대좌부(貸座敷)' 설정 지역으로 개편되었다. 동시에 유녀는 '창기(娼妓)'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일본의 유곽과 공창제 또한 한반도로 이식되었다. 1876년 일본에 의해 조선이 개항된 직후부터 부산과 원산, 인천의 개항장에 일본인 유곽 업자와 창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정부는 1880년대부터 이들의 성매매에 대한 관리정책을 시행하며 일본의 조선 진출을 촉진하였다.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일본식 유곽이 들어섰으며, 조선인을 대상으로는 '일가(一家)'의 성매매 영업을 허용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유곽은 집결지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매매 영업을 하는 개별 업소를 지칭하는 것으로도 인식되었다. 식민 권력은 비 공창 업소인 요리점이나 음식점에서의 성매매도 묵인하여 조선사회에서는 공창뿐 아니라 공공연한 성매매 영업을 하는 사창 업소 또한 유곽으로 통칭되었다.
내용
현황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일본 유녀평판기의 통시적 연구』 (김진영,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박사학위논문, 2015)
- 「식민지 조선의 군사점령과 성 관리」(송연옥, 송연옥·김영 편저, 『군대와 성폭력: 한반도의 20세기』, 삼인, 2012)
- 「유곽」 (사에키 준코, 『매매춘과 일본문학』, 지만지, 2008)
- 「遊廓」(樺山紘一 編, 『歴史学事典ー第2巻からだとくらし』, 弘文堂, 1994)
- 「遊廓に対する感念と密淫売に付いて」 (脇野義雄, 『警務彙報』 123, 1916.6)
주석
-
주1
: 일본 역사의 시대 구분 가운데,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대장군이 되어 에도(江戶)에 막부(幕府)를 연 때부터 1867년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가 정권을 천황에게 돌려준 때까지의 시기. 봉건 사회 체제가 확립된 시기이며, 쇼군(將軍)이 권력을 장악하고 전국을 통일ㆍ지배하던 시기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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