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곽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 의해 조성된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업소 또는 그 집결지를 일컫는 말이다. 본래 17세기 초반,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공창제에 법적 근거를 두고 국가권력의 허가를 받아 성매매 영업을 하는 집결지를 지칭하는 말이다. 아시아태평양 전쟁기 일본의 정치력이 미쳤던 모든 지역에 이식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876년 조선이 개항된 직후부터 부산과 원산, 인천의 개항장에 일본인 유곽 업자와 창기들이 나타났다. 해방 이후 공창제는 폐지되었지만 공공연한 사창 영업과 국가권력의 묵인은 여전히 남아 탈식민의 과제가 되었다.
유곽(遊廓)은 17세기 초반,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공창제 하에서 법적 근거를 갖추고 국가권력의 허가를 얻어 성매매 영업을 하는 집결지를 말하였다. 또한 공창제 시행 전후시기에 공식적인 법령 없이 국가권력으로부터 허가 또는 묵인을 받고 공공연하게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업소나 집결지도 유곽이라고 불렀다. 일본식의 성매매 관리정책과 유곽은 19세기말 이후 한국과 타이완, 만주, 남양군도, 아시아태평양 전쟁기의 일본 점령지 등 일본이 조계지로 삼거나 식민지로 지배한 지역, 위임통치지역, 전쟁 점령지 등 일본의 정치력이 미쳤던 모든 지역에 이식되었다.
‘유곽’이란 단어는 본래 일본어로서 유카쿠[遊廓]가 원 발음이다. 유곽(遊郭)이라고도 쓴다. 그 주위를 도랑이나 울타리로 에워싸고 출입구를 한 곳으로 제한하여 외부와의 관계를 차단한 경우가 많았던 것에서 비롯한다. 유곽은 16세기 후반, 도요토미[豊臣秀吉]의 치세 하에서 오사카, 교토 등에 처음 출현하였으며, 17세기 초반에도 막부가 도쿄에 요시와라 유곽[吉原 遊廓]을 개설하고 '게세마치에게 명한다[傾城町被仰付候節御書付]'는 법령을 발령하여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설립 초기의 유곽은 부유한 상인이나 권력자를 상대로 유녀들이 예능을 선보이고 유흥을 즐기는 공간이었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유곽의 수가 늘어나고 대중화되면서 일반 서민이 주요한 고객층이 되었다.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성 판매 여성의 등록과 성병 검진, 거주 제한을 중심으로 한 근대 공창제가 시행되면서 에도시대의 유곽은 근대 일본의 ‘대좌부(貸座敷)’ 설정 지역으로 개편되었다. 동시에 유녀는 '창기(娼妓)'로 명칭이 바뀌었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식민지화 과정에서 일본의 유곽과 공창제 또한 한반도로 이식되었다. 1876년 일본에 의해 조선이 개항된 직후부터 부산과 원산, 인천의 개항장에 일본인 유곽 업자와 창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정부는 1880년대부터 이들의 성매매에 대한 관리정책을 시행하며 일본의 조선 진출을 촉진하였다. 일본인 거류지를 중심으로 일본식 유곽이 들어섰으며, 조선인을 대상으로는 '일가(一家)'의 성매매 영업을 허용했다. 식민지 조선에서 유곽은 집결지를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매매 영업을 하는 개별 업소를 지칭하는 것으로도 인식되었다. 식민 권력은 비 공창 업소인 요리점이나 음식점에서의 성매매도 묵인하여 조선사회에서는 공창뿐 아니라 공공연한 성매매 영업을 하는 사창 업소 또한 유곽으로 통칭되었다.
유곽의 성 판매 여성은 강제 성병 검진 제도, 등록제도에 의해 관리되었다. 공인 유곽의 설치 취지는 중류 계급 이하의 남성들을 대상으로 업주가 창기의 성 판매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에서 식민 권력은 유곽이 지나치게 화려한 외양을 갖추거나 비싼 유흥비를 받지 않도록 단속했다. 근대 국가는 유곽을 홀몸으로 도시 생활을 해야 하는 남성들의 성 문제 해결을 위한 '필요악'의 공간으로 인식했고, 가능한 한 도시 외곽으로 밀어내려고 했다.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으면서 격리되고 집결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풍기와 위생 차원에서 관리하기가 좋다고 인식했다. 유곽의 성 판매 여성들은 일반 사회의 여성들과 공간적으로 분리되는 동시에 도덕적 · 윤리적으로도 비정상적인 존재로 분리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 공창제는 폐지되었지만 공공연한 사창 영업과 이에 대한 국가권력의 묵인-관리 체제는 여전히 남아 탈식민의 과제가 되었다. 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제정된 이후 공공연한 성매매 집결지는 철거의 수순을 밟고 완전히 사라졌다. 동시에 국가권력의 통제와 관리 대상이었던 유곽 또한 사람들의 기억에만 남게 되었다.
유곽은 국가권력의 허가나 묵인 하에 공공연하게 성매매 영업을 하는 업소나 집결지에 대한 세속적인 호칭이었다. 국가권력은 성매매에 대한 표면적인 폐지정책이나 금지정책을 넘어 묵인의 방식으로 성매매 영업을 공인하면서 가부장제 사회를 강화하고 여성에 대한 통제를 시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