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해방 이후 마산결핵요양원 간호원장을 역임한 의료인. 간호사.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효정은 세브란스병원 간호부로 근무하던 1926년 11월에 동료인 김덕은(金德恩), 정도은(鄭道恩)과 함께 병원을 대상으로 분규를 일으켰다. '기숙사 보모의 불공평한 태도 개선, 기숙음식 개선, 밤 근무 간호원의 증원, 간호원이 환자 음식을 나르는 신 규정 폐지'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병원에 제출하였다. 같은 해 12월 21일 병원 이사회는 이효정 등에게 면직을 명령하였다. 간호부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는 이 움직임은 세브란스 병원 간호부양성소 학생 4명의 정학으로 이어졌고, 학생들은 동맹휴학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1927년부터 이효정은 다시 세브란스 병원 간호부가 되어 4년간 일하였다. 이후 함흥 제혜병원, 캐나다선교회 보건부, 영등포 도화병원, 국립 마산결핵요양원 등에서 30여 년간 간호사로 근무하였다. 6 · 25 전쟁 때는 마산에 북한 인민군이 들어와서 병원 직원이 철수하였을 때, 혼자 병원에 남아서 환자를 간호하기도 하였다. 이효정은 평생 간호실무자로 일하다 1961년 은퇴하였다. 1965년 9월 24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자택에서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 『한국근대간호사』(이꽃메, 한울, 2003)
- 「간호의 역사, 잊지 못할 순간들: 1957년, 이효정 한국 최초로 제16회 나이팅게일기장 수상」(윤진아, 『대한간호』 47-3, 대한간호협회, 2008)
- 「‘세부란스’병원의 간호소생 동요?」(『동아일보』, 1926.12.23)
- 「선동자를 축출」(『동아일보』, 1926.12.25)
- 「간호부 보모간 난투후 동맹파업」(『매일신보』, 1927.1.3.)
- 『동아일보』(1959.5.31)
- 「첫 ‘나이팅게일’ 이효정여사 별세」(『동아일보』, 196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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