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방공예 ()

사제첩 / 바느질 / 조영석
사제첩 / 바느질 / 조영석
의생활
개념
조선시대와 근대에, 규방(閨房)이라는 생활 공간 속에서 여성들이 바느질(針線)로 제작한 공예품과 그 행위.
이칭
이칭
침선(針線) 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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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규방공예는 조선시대와 근대에 규방(閨房)이라는 생활 공간 속에서 여성들이 바느질(針線)로 제작한 공예품과 그 행위이다. 조선시대 규방 여인들의 바느질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는 복식(服飾)류 이외에 보자기, 주머니, 골무, 바늘꽂이, 바늘집, 가위집, 자집 등 작은 생활 용품이 있다. 이러한 규방공예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홈질, 박음질, 감침질, 시침질, 공그르기 등 기초 바느질법과 자수, 매듭, 누비 기법 등이 사용되었다.

정의
조선시대와 근대에, 규방(閨房)이라는 생활 공간 속에서 여성들이 바느질(針線)로 제작한 공예품과 그 행위.
연원

규방(閨房)은 ‘규수들의 방‘ 또는 ’부녀자가 거처하는 안방‘을 의미한다.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은 바깥 외출을 금지당할 정도로 사회적인 활동이 철저히 제한되었으며, 단지 가정에서 내훈서(內訓書)를 중심으로 유교 정신에 입각한 가정 내 범절과 문자를 배우고 가사 기술을 배우는 것이 활동의 전부였다. 특히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 가르치듯이 내외법(內外法)이 심하였고, 여인의 외출이 금지되다시피 하였기 때문에 여인들은 일상 생활을 거의 집안에서 조용히 안방에 들어 앉아 바느질을 익히며 골무, 바늘꽂이, 조각보, 주머니 등의 소품에서부터 의복, 병풍 등 대작(大作)에 이르기까지 생활용품을 만들어냈다.

조선 영조(英祖) 때 『여사서언해(女四書諺解)』에는 “아들을 낳으면 상 위에 누이고 구슬을 주어 놀게 하고, 딸을 낳으면 상 아래 누여서 실패를 가지고 놀게 한다.”고 하였으며, 1472년(성종 3)에 소혜왕후(昭惠王后: 韓氏)가 쓴 『내훈(內訓)』에는 여자가 지켜야 하는 것 중에는 “열 살이 되면 여자는 실과 골풀을 다스리며 베와 비단을 짜고 곱고 가는 끈이나 굵은 실을 꼬며 여자의 일을 배워서 의복을 만들어 바치게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여아(女兒)는 나이 10세 전후가 되면 바늘을 잡기 시작했으며 비록 사가(私家)에는 침모(針母)가 바느질을 전담하고, 궁중에도 침방(針房)이 따로 있었지만 침선(針線)은 모든 여인들의 일상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침선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으로는 복식류 이외에 보자기, 주머니, 골무, 바늘꽂이, 바늘집, 가위집, 자집 등 작은 생활용품이 있으며, 이러한 규방공예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홈질, 박음질, 감침질, 시침질, 공그르기 등 기초바느질법과 자수, 매듭, 누비 기법 등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규방공예란 규방(閨房)이라는 생활 공간 속에서 여인들이 바느질 작업을 통해 만들어낸 복식(服飾)이나 소품들로써 자신들의 솜씨와 섬세한 미의식을 표현한 것이라 할수 있겠다.

규방공예의 범주와 내용

규방공예품의 대표적 아이템인 조각보는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하나하나 공들여 이어 붙이면서 복을 기원하고 정성을 표현하였다. 조각보의 재료는 명주, 모시, 무명, 베 등이며, 만드는 방법에 따라 홑, 겹, 누비, 솜보자기가 있는데 끈의 매무새는 반 접혀 한 귀에 달린 것, 중앙에 대각선으로 달린 것, 대각선상으로 양 귀퉁이에 달린 것, 네 귀퉁이에 달린 것, 혹은 없는 것 등 다양하다. 이러한 조각보는 물건의 용도에 따라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하여 밥상보, 이불보, 옷감보, 책보 등과 혼례용인 폐백보, 기러기보, 사주보, 예단보, 패물보 등 여러 가지 용도로 쓰였다.

또한 주머니는 돈이나 소지품을 넣기 위해 헝겊으로 만들어 끈을 꿰어 만든 물건으로, 우리 전통옷에는 주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남녀노소, 신분의 높음과 낮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꾸준히 패용되었다. 주머니를 분류해 보면 형태에 따라서 염낭(해낭,亥囊), 귀주머니(자낭,子囊), 약주머니, 사각 주머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장식에 따라서는 비빈만이 차는 진주낭(眞珠琅)부터 수를 놓은 수낭(繡囊), 그 위에 금박(金箔)을 한 부금낭이 있으며, 용도에 따라서는 향을 담는 향 주머니, 약을 담은 약 주머니, 부적을 몸에 지니기 위한 부적 주머니, 부싯돌과 담배를 담은 부시 주머니와 쌈지, 붓을 보관했던 필낭(筆囊), 도장을 보관했던 도장 주머니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사용된 소재에 따라서는 숙고사(熟庫紗) 주머니, 갑사(甲紗) 주머니, 모본단(模本緞) 주머니, 명주(明紬) 주머니, 무명 주머니, 가죽 주머니, 종이 주머니 등이 있다.

이외에 바느질 용품으로 바늘꽂이, 골무 등이 있는데 바늘은 규중칠우(閨中七友) 중의 하나로 침선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도구이지만, 아무 곳에나 두면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필요할 때 언제나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몸에 지니거나 규방 내에 비치하여야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바늘 보관 용구가 다양하게 발달했으며 바늘집, 바늘꽂이, 바늘쌈지 등이 있었다.

골무는 규중칠우쟁론기(閨中七友爭論記)에 감투 할미로 묘사될 만큼 규중 부인들의 총애를 받았으며, 바늘, 자, 가위, 인두 등과 함께 침선의 필수품이었다. 바느질을 할 때에 바늘을 눌러 밀어 주고 바늘이 손 끝에 찔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둘째 손가락에 끼워 사용한 것으로, 주로 감침질을 할 때나 바늘이 들어가기 힘든 옷감에 사용되었다. 옛날 혼기를 맞은 처녀들은 틈이 날 때마다 백수(壽)를 상징하는 골무 100개를 만들어 혼수감으로 가져갔다. 이렇게 만들어진 규방공예품에는 일상생활에서 쓰임새를 가진 실용품으로, 생활의 지혜와 여성들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와 같이 옛 여인들의 꿈과 소망이 담겨져 있는 규방공예품(閨房工藝品)들이 현대에 되살아나면서 현대의 규방공예는 여성들의 취미, 작품 활동과 더불어 생활 속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더 나아가 한국적 이미지가 담긴 문화 상품으로 개발되어 우리 규방문화를 재창조하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여사서언해(女四書諺解)』
『내훈(內訓)』(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韓氏))

단행본

국립문화재연구소, 『침선장-중요무형문화재 제89호-』(1998)
유희경,『한국복식사연구』(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1975)

논문

이미석, 「향(香)집에 관한 연구」(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4)
이미석, 「조선시대 규방문화와 침선소품에 관한 연구」(숙명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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