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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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국가유산
직물이나 복식에 금박을 붙여 문양을 표현하는 기술과 장인.
이칭
이칭
도다익장(都多益匠), 부금장(付金匠)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명칭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무형유산(2006년 11월 16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금박장은 직물이나 복식에 금박을 붙여 문양을 표현하는 기술과 장인이다. 조선시대에는 도다익장(都多益匠), 부금장(付金匠)이라 하였다. 금박장은 2006년 11월 16일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금박은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복식, 쓰개류, 장신구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목차
정의
직물이나 복식에 금박을 붙여 문양을 표현하는 기술과 장인.
내용

금박장은 직물이나 복식에 금박을 붙여 문양을 표현하는 기술과 장인이다. 2006년 11월 16일에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도다익장(都多益匠), 부금장(付金匠)이라 하였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금박장은 금을 두드리거나 납작하게 눌러 아주 얇게 금편을 만드는 장인으로 한정하여 지금의 금박장과는 개념적으로 차이가 있다. 1867년(고종 4) 편찬된 『육전조례(六典條例)』에는 공장의 소속으로 금은색(金銀色)에 금박장, 의대색(衣襨色)에 도다익장으로 기록함으로써 장인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였다.

우리나라 금박의 연원은 삼국시대의 기록과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색복(色服)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6두품과 5두품 여자 복식에 금니(金泥), 은니(銀泥) 사용을 금지한 내용이 있어 당시 복식에 니금(泥金) 장식이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인물의 복식 중 금박 머리 장식을 드리운 그림이 있으며,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 두침과 족좌에 금박 장식이 남아있어 당시 금박 기술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금박을 소금(銷金)이라고 칭하였으며, 『고려사(高麗史)』에는 소금용봉문능라(銷金龍鳳文綾羅), 소금홍라(銷金紅羅), 소금홍매화라(銷金紅梅花羅) 등이 복식과 보자기 등에 사용된 기록이 보인다. 1302년(충렬왕 28) 아미타여래좌상 복장에서는 홍색 라직물에 화문과 용문을 금박한 겹보자기 2점이 발견되었다. 1346년(충목왕 2) 문수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복장의 ‘인자황수파어용문라(印雌黃水波魚龍紋羅)’는 금박의 재료가 자황으로 밝혀져 고려시대에 이미 금을 대체한 재료의 활용까지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이후 국가에서 문직물 제직을 금하면서 직금(織金) 제직이 감소되자, 금박은 더 활성화되어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복식, 쓰개류, 장신구에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왕실 여성의 원삼과 스란치마 등 의례복에는 봉황을 찍어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고, 여인들의 저고리, 당의, 치마에는 도류불수, 연화, 모란, 매화, 국화, 보문, 박쥐, 그리고 수자, 복자, 희자 등 다산과 부귀을 상징하는 문양을 금박하였다. 어린아이의 옷과 쓰개류에는 무병, 장수, 다복의 염원과 유교적 충효의 가르침이 담긴 길상어구(吉祥語句)를 장식하였다.

오늘날 금박의 공정은 금박판 조각하기, 금박판에 풀 바르기, 금박 올리기, 주무르기, 금박 털어내고 뒷손질하기 순으로 진행된다.

금박판의 도안이 정해지면 목판 위에 도안의 역상(거울에 비치는 문양)을 그리고, 목판의 바깥쪽부터 조각하는데, 무늬가 도드라지는 양각으로 새긴다. 금박 풀은 예전에는 어교(魚膠), 아교(阿膠), 명교(明膠) 등을 사용했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천연 니스와 송진을 섞어 풀을 만들어 썼다. 1950년대 이후에는 천연 니스를 구하기 어려워져서 옵셋 잉크에 공업용 니스를 섞거나 송진을 섞어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현재까지도 대부분의 금박은 옵셋 잉크를 사용한다.

금박과 풀, 옷감, 금박판 등이 준비되면 옷감에다 금박을 찍는데 이를 “금 올린다.”라고 한다. 금박판에 풀을 발라 직물 위에 찍고 바로 금박을 올린다. 약간 굳은 뒤에 금박이 고루 먹히도록 손가락 끝에 힘을 주어 금박 부분을 눌러 주물러 준다. 수일 동안 건조한 다음 금박이 완전히 옷감에 접착되면 솜으로 가볍게 문질러 금을 털어낸다. 금박 문양이 빠진 부분은 뾰족한 도구를 사용하여 풀을 발라 그 위에 금박을 올려 보충한다. 문양 이외에 직물에 묻은 금박은 날카로운 칼로 긁어 마무리한다. 아교나 어교를 사용하여 금박한 의복은 곰팡이가 나지 않도록, 처음 1년 이상은 한 달에 1회 이상 옷장에서 꺼내 거풍하며 건조시킨다. 금박에서 마지막 건조 과정은 작품 보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공정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심연옥·이채원, 『금박장-중요무형문화재 제119호-』(민속원, 2009)
심연옥·이선용, 『한눈에 보는 금박』(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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