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포(春布)라는 직물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소재와 직조법이 다르게 사용되었다. 현재 충청남도 청양 지방에서 전승되는 춘포는 날실에 명주실, 씨실에 모시실을 섞어 짠 사저교직(絲苧交織)을 말하지만, 조선시대 문헌에 기록된 춘포는 날실에 무명실, 씨실에 모시실과 무명실을 번갈아 짠 교직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의 문신 서유구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면실을 날실로 쓰고 면실과 모시실을 바꾸어가며 씨실로 쓰면 춘포라 말한다”고 했으며,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열다섯새 무명 날(날실)에 북 둘을 무명 올과 모시를 각각 아롱주같이 짜면 당춘포(唐春布)보다 훨씬 낫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현재의 춘포와 같은 명주실과 모시실의 교직물을 ‘사저교직포(絲苧交織布)’, ‘사저겸직포(絲苧兼織布)’로 명명하였으며, 조선 전기 세종대의 기록에서만 확인된다. 조선시대 문헌 중에 많이 보이는 흑마포(黑麻布)를 사저교직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사저교직 유물은 고려시대 답호 1점과 조선 전기 불복장과 출토복식에서 일부 확인된다. 조선 전기 이후 면직물이 보편화됨에 따라 사면교직(絲棉交織)이 유행하면서 사저교직(絲苧交織)의 생산이 감소한 것으로 본다.
근대기에 사저교직물은 춘포로 명칭이 바뀌어 제직되며, 현재까지 동일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춘포는 모시가 많이 재배된 충청남도 일대에서 주로 제직되었으며 품종도 다양하였다. 1915년에 간행된 『조선휘보(朝鮮彙報)』의 「조선향염직물명칭류휘(朝鮮向染織物名稱類彙)」에는 춘포의 품종으로 선라(蟬羅), 선라(縇羅), 춘사(春紗), 춘포(春布), 공춘(公春) 등을 언급하고 있다. 선라(蟬羅)는 선라(縇羅)와 같은 것으로 충청남도 공주 연산(蓮山) 지방에서 생산하며, 경사에 생사(生絲), 위사에 저사(苧絲) 2올, 생사 2올을 서로 번갈아 짠 것으로 직기에서 내린 후 정련한 것이라고 하였다. 춘포는 정련하지 않은 것, 춘사는 춘포를 정련한 숙춘(熟春)이라고 하였다. 춘포는 현재 청양 지방에서 전승되고 있으며, ‘청양춘포짜기’는 충청남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춘포는 모시와 같이 정갈하고 시원하며, 명주처럼 가볍고 매끈한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어 봄, 여름 옷감으로 귀하게 사용된 전통 직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