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금(織金)은 견사(絹絲)로 바탕을 짜고, 금사(金絲)로 문양을 직조한 중조직의 문직물이다. 문헌에는 직금(織金), 금선(金線), 금란(金欄) 등으로 나타난다.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에는 직금을 ‘금 드려 짠 비단’이라 하고, 『역어유해(譯語類解)』에서는 직금단자(織金段子)를 ‘금션비단’으로 언해하고 있다.
직조에 사용된 금사의 종류에는 편금사(片金絲)와 연금사(撚金絲)가 있다. 편금사는 종이에 접착제를 바른 후 그 위에 금박을 붙이고 건조한 다음 일정한 너비로 자른 편편한 형태의 금사를 말한다. 연금사는 방추차의 회전력을 이용해 심사에 편금사를 말아 감은 둥근 형태의 금사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직금은 대부분 편금사로 제직되었으며, 일부 직금 흉배 등에 연금사가 쓰였다.
직금의 구조는 바탕 조직 위에 금사를 덧짜서 문양을 표현하는 부가문 위사 위중 조직이다. 바탕 조직에 따라 직금주(織金紬), 직금능(織金綾), 직금단(織金緞), 직금라(織金羅), 직금사(織金紗), 직금금(織金錦), 직금장화(織金粧花) 등으로 구분한다.
삼국시대에는 금세공 기술이 발달하여, 가늘고 정교한 금사를 제작하여 끈을 짜고 자수를 하는 등 다양한 직물 공예에 사용하였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사리기에서는 문라 직물 바탕에 연금사를 징금수한 자수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부여 능산리 사지, 부여 왕흥사지 등에서도 연금사가 다수 발견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금사로 직조한 직금 직물이 크게 유행하였다. 직금 유물은 고려 말인 1300년대에 집중적으로 발견되며, 주로 불 복장으로 남아 있어 바탕 직물의 색채와 금사가 잘 보존되어 있다. 대부분 무문능(無紋綾)과 문능을 바탕 조직으로 제직한 직금능이며, 드물게 직금사, 직금주, 직금금 등이 보인다. 직금의 문양은 간략한 소형의 단위 문양을 탑쌓기 방식으로 엇갈리게 하여 반복해 배치하는 구성 형태이다. 이러한 직금의 문양을 문헌에서는 ‘금탑자(金塔子)’라 하며, 문양의 소재가 다양하여 소화문(小花紋), 조문(鳥紋), 토문(兔紋), 영양문(羚羊紋), 나비문, 석류문, 원앙문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자 조직의 단직물이 일반화되면서 직금의 제직에도 수자 조직이 도입된다. 수자 조직 바탕의 직금단(織金緞)은 직금저사(織金紵絲)라고도 하며, 조선시대에는 주로 금선단(金線緞)으로 명명되었다. 그 외 문헌에는 직금라(織金羅), 직금사(織金紗) 등의 기록도 보이며, 서울 수국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및 복장유물에서는 홍색의 직금라(織金羅) 잔편이 발견되었다. 조선시대 직금의 용도는 왕실과 상류 사회 여성들의 원삼, 저고리, 치마, 당의 등에 사용되었으며, 조선 전기에는 여성용 단령에서 직금 흉배(胸背)를 찾아볼 수 있다. 용인 영덕동과 인천 석남동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여성 단령 흉배에는 금사로 공작문, 단호문단호문 흉배(單虎紋)을 직금하였다. 또한 여성들의 의례용 치마에는 포도동자, 연화동자 등을 직금 스란(膝欄)하여 다산을 상징하였다. 조선시대 직금의 문양은 화문이 가장 많이 확인되며 화문 외에도 금원문(金圓紋), 번(幡) 보주(寶珠) 영락문(瓔珞文), 운문이 나타난다.
현재에도 직금은 알루미늄 금박사를 사용해 자카르식 직조기로 제직하여 전통 한복감에 널리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