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악대 복식 ( )

의생활
제도
1901년(광무 5), 신식 군악대의 제복으로 규정된 복식 제도.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1901년(광무 5)
공포 시기
1901년(광무 5)
시행 시기
1901년(광무 5)
폐지 시기
1907년(광무 11)
내용 요약

군악대 복식은 1901년(광무 5)에 신식 군악대의 제복으로 규정된 복식 제도이다. 1901년 9월에 고종 황제의 만수성절(萬壽聖節)에 첫 공연을 한 것을 시작으로 황실의 여러 행사에서 군악대가 동원될 때 착용되었다가 1907년(광무 11)에 군대가 해산되는 것과 함께 폐지되었다. 이는 깃털을 세운 빨간 모자와 검은 상의, 빨간 바지, 악기형의 휘장이 특징이다.

정의
1901년(광무 5), 신식 군악대의 제복으로 규정된 복식 제도.
제정 목적

1900년(광무 4) 12월에 군악대 설치령으로 군악대의 편제가 제정되었으며, 1901년(광무 5) 7월에 군악대 복식이 규정되었다. 이는 군악대의 첫 공연이 1901년 9월 고종 황제만수성절(萬壽聖節)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규정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군악대는 황실 행사를 중심으로 동원되었다.

내용

군복을 규정하는 법령에 처음으로 ‘군악대’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01년의 ‘「육군 장졸 복장 제식(陸軍將卒服裝制式)」 개정’이다. 그 법령에서 깃 휘장인 의령장(衣領章)에 주4로 악기 모양을 다는 것과 모자 가운데에 깃털 장식을 세우는 것, 모자의 윗부분과 바지를 주1으로 하는 것이 규정되었다.

군악대 복식의 규정은 「육군 장졸 복장 제식」의 ‘개정’에 들어갔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추가된 형식이었으므로 군악대 복식의 전체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 시행되었던 육군의 군복 규정을 알아야 한다. 육군 군복의 규정에는 때와 장소에 따른 군복 차림을 규정한 「육군 복장 규칙(陸軍服裝規則)」과 군복을 구성하는 의복의 제작법을 규정한 「육군 장졸 복장 제식」이 있다. 군악대 복식 규정에 나온 예복의 상의는 대례의(大禮衣)였는데 당시 유효했던 「육군 복장 규칙」에서 대례의를 착용하는 차림은 주5에 해당한다.

장교인 군악대 대장의 경우, 정장 차림은 모자, 상의, 바지, 대견장(大肩章), 장식 띠, 칼 장식 끈, 칼을 고정하는 벨트, 장갑, 덧대는 안깃, 구두로 구성된다. 그중 상의는 두 줄 단추의 더블 주6 재킷이다. 그러나 군악대의 대원들은 하사졸(下士卒)로 모자와 상의, 바지 외에 혁대와 구두를 착용하였다. 하사졸의 상의는 한 줄 단추의 싱글 브레스티드(Single-breasted) 주2이었다. 군악대 복식의 특징으로 깃털을 세운 빨간 모자와 검은 상의, 빨간 바지, 악기형 휘장을 들 수 있다.

변천사항

1907년(광무 11)에 군대 해산과 함께 군악대 또한 폐지되었으며 일부 군악대원이 장례원(掌禮院) 주3로 흡수되었으나 더 이상 군악대 복식을 착용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 및 평가

군악대 복식은 육군 군복의 기본 형태를 따르면서 차별화된 휘장과 장식, 색상으로 군악대를 돋보이게 한 데에 의의가 있으며 대한제국의 행사를 군악 연주와 함께 복식으로 빛냈을 것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원전

『관보(官報)』(대한제국기)

논문

이경미·노무라미찌요·이지수·이민정, 「대한제국 1901년 군악대 복식 재현을 위한 고증과 디자인 연구」(『복식』 68-5, 한국복식학회, 2018)
이경미·노무라미찌요·이지수·김민지, 「대한제국기 육군 복장 법령의 시기별 변화」(『한국문화』 83,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8)
주석
주1

사람의 입술이나 피의 빛깔과 같이 짙고 선명한 색. 우리말샘

주2

앞의 겹치는 섭이 좁고 외줄 단추가 달린 재킷. ⇒규범 표기는 ‘싱글브레스트 재킷’이다. 우리말샘

주3

대한 제국 융희 원년(1907)부터 1911년까지 궁중 음악을 맡아보던 관아. 조선 초기부터 있던 장악원의 후신이자 현재의 국립 국악원의 전신이다. 우리말샘

주4

황금을 가늘게 뽑아 만든 실. 우리말샘

주5

정식의 복장을 함. 또는 그 복장. 우리말샘

주6

상의 좌·우 앞판을 겹쳐 잠그는 여밈 방식.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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