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 (André Kim)

의생활
인물
한국 패션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
이칭
본명
김봉남(金鳳男)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35년 8월 24일
사망 연도
2010년 8월 12일
본관
개령(開寧)
출생지
경기도 고양
주요 저서
『마이 판타지』(2002)|『앙드레김 My Fantasy』(2010)
주요 작품
「1988 서울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 유니폼 디자인」 등
주요 경력
유니세프 친선대사
대표 상훈
프랑스정부 예술문학훈장(2000)|아시아모델페스티벌어워즈국제문화교류공로상(2009)|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2010)
관련 사건
옷로비 사건(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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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앙드레김은 한국 패션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우리나라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이다. 자신의 패션 디자인을 ‘판타스틱’하고 ‘우아한’ 한국적인 예술의 하나로 승화시키고자 하였다. 우리나라의 디자이너 중에서 가장 먼저 해외 패션쇼를 개최하였고, 대중들에게 패션을 널리 알리면서 한국의 패션 디자인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 받아 정부와 여러 단체로부터 많은 상을 받았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였으며, 여러 사회 단체를 지원하는 위한 자선 패션쇼를 자주 개최하였다.

정의
한국 패션 분야의 발전에 기여하며 왕성하게 활동한 한국 최초의 남성 패션디자이너.
인적사항

앙드레김(André Kim)의 본명은 김봉남(金鳳男)이다. 1935년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났으며, 2010년 8월 대장암으로 사망하였다. 패션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 독신으로 지냈고, 가족으로는 1982년 입양한 아들 김중도가 있다. 앙드레김은 매우 가정적이었으며, 아들 김중도는 앙드레김 사후에 아버지의 작품을 한국민속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주요활동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려면 부르기 쉬운 외국어 이름이 좋겠다는 외국 친구의 권고로 앙드레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본 영화 “퍼니 걸(funny girl)”의 오드리 햅번이 입었던 의상을 보며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키웠으며, 1961년 국제복장학원의 1기생으로 패션 디자인 1년 과정을 수료하였다. 다음 해인 1962년 서울 반도호텔에서 남성 디자이너로는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한 후, 소공동에 “살롱 드 앙드레”라는 이름의 의상실을 열었다. 1964년 최고의 스타였던 신성일(申星一)과 엄앵란(嚴鶯蘭)의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높였다. 그의 작품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연예인과 사회 지도층 소비자들에게 애용되면서, 대중들에게 패션 디자인 분야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1966년 프랑스 패션 협회 초청으로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서 패션쇼를 열었다. 앙드레김의 패션쇼는 ”신비로운 아름다움, 동양의 고요한 나라로부터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로부터 거의 50여 년간 그는 자신의 패션 디자인에 한국적인 미학(美學)을 표현하는 데 주력해 왔다.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한국적인 소재와 문양, 디테일과 스토리를 꾸준히 고집하며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창출하였다. 즉,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의상에 여러 가지 한국적인 문양을 애용하였다. 주로 국산 소재를 사용하면서, 그 위에 자수나 아플리케 기법을 활용하여 새로운 소재로 재창조하여 사용하였다. 그 결과 그의 창의적인 디자인은 시인도(視認度)가 매우 높고 독특하였다.

‘판타지’와 ‘엘레강스’는 자신의 패션 디자인에서 추구한 판단 기준이었다. 한민족이 선호한 백색과 어머니가 지어 주셨던 새하얀 의복은 꿈에서나 상상해보는 한국적인 판타지로 그의 패션 디자인에 영감이 되었다.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백색 웨딩드레스로 여성의 아름다운 인체와 순수함, 나아가 코리안 판타지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엘레강스를 추구한 그는 노출이 없는 디자인을 고수하였다. 또한 한국 여성의 한(恨)을 상징하기 위한 8~9벌로 겹쳐 있는 “겹옷 드레스”는 앙드레김의 대표적인 디자인의 하나이다. 패션쇼의 스토리는 늘 순백의 웨딩드레스로 해피 엔딩을 상징하며 마무리되었다.

백색을 좋아한 앙드레김은 늘 백색 의상을 입고 생활하였다. 옷장에는 거의 같은 종류의 옷이 수십 벌 있을 정도였다. 쇼윈도나 작업실은 물론 타고 다니는 자동차도 백색일 정도로 백색을 좋아하였다.

작품을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관리도 철저했으며,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의리를 중시하였다. 술, 담배, 커피는 입에 대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식사하는 모습도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작업과 연관하여 TV는 5대를 동시에 보고, 신문도 15개를 구독하면서 제목이라도 읽으며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TV를 보며 가능성 있어 보이는 신인 연예인들을 패션쇼 모델로 발탁하기도 하여, 연예인들에게 앙드레김의 패션쇼 무대는 선망의 무대였다.

1990년부터 앙드레김의 의상은 해외 스타들에게도 애용되었는데, 팝스타 마이클 잭슨, 배우 나스타샤 킨스키, 브룩 쉴즈 등이 입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마이클 잭슨은 화려한 용문양(龍文樣) 자수(刺繡) 의상을 좋아했으며, 그의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앙드레김의 의상을 입는 등 공식 석상에서 자주 입었다.

작업실에서는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서 패션 아이디어와 패션쇼의 영감을 얻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으며, 성악가나 연주자들의 의상도 많이 디자인하였다. 한국 유니세프의 친선 대사를 지내며 수백 회에 이르는 자선 패션쇼를 개최하고 다양한 사회 활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기도 하였다.

1999년 일어난 “옷로비” 사건으로 인생의 큰 시련을 맞이했으나, 오히려 자신의 결백함이 드러나면서 대중적인 인기가 상승하였다. 그 후 여러 회사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거나, 컬래버레이션도 진행하였다. KB 국민은행의 카드를 디자인하거나 롯데시네마의 티켓도 디자인하였다(2009). 2008년에는 한국도자기와 협업으로 앙드레김 홈세트, 예단용(禮緞用) 칠첩반상기(七疊飯床器) 등을 출시하였다. KD 운송그룹의 승무원 제복을 디자인하였고, 공군용 빨간 마후라(2009)도 특별 제작하였다. 2009년 삼천리자전거에서 André Kim 브랜드를 만들어서 미니벨로, 부인용 등 12종을 출시하였다. 그의 경력에 비해 교복 디자인은 용인 한국외국어대학교 부설고등학교의 교복이 유일하다.

학문과 저술 · 사상과 작품

2002년에 『마이 판타지』를 출간하였고, 2010년에는 『앙드레김 My Fantasy』를 출간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0년에 프랑스 정부 예술 문학 훈장을 받았으며, 2005년에는 제1회 한국복식학회상을 받았다.

2007년에는 제7회 자랑스런 한국인대상 패션 디자인 부문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아시아 모델 페스티벌 어워즈 국제 문화 교류 공로상을 받았다. 2010년 앙드레김 사후에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한민국의 패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주제로 우아하고 환상적인 패션 디자인 작업을 지속하였고, 다양한 콜래버레이션도 병행하면서 한국 패션 디자인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할 수 있다. 국산 소재를 사용하며 자수와 아플리케 등 공예 기법을 적용한 디자인은 시장에 복제품이 자주 등장할 정도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수많은 자선 패션쇼를 하며 패션디자이너의 사회적 기여 방안을 모색했던 활동도 크게 평가받는 부분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앙드레김, 『마이 판타지 My Fantasy』(아침나라, 2002)
이은영, 『ANDRE KIM 나는 앙드레 김입니다』(에이치엠코리아, 2010)

논문

강신용, 「앙드레 김의 인물 브랜딩 디자인 연구」(『일러스트레이션 포럼』 32, 한국일러스트레이션협회,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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