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은 과거 세겹살이라고 불렸는데 주로 찜이나 편육, 조림 등으로 많이 먹었다. 1957년 조리서 『이조궁정요리통고(李朝宮庭料理通考)』에서 “제육편육은 돼지고기 세겹살 부분을 삶아서 엷게 저민 것”이라고 하였다. 『동아일보』 1934년 11월 3일자 기사에는 “도야지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중략) 뒤넙적다리와 배 사이에 잇는 세겹살(三枚라 하는)이 제일 맛이 잇다하고 그 다음으로는 목덜미살이 맛이 잇다.”고 하였다. 그리고 1983년 8월 14일 『조선일보』 기사에서 “속칭 ‘삼겹살’이라 해서 새우젓을 곁들이는 세겹살코기는 아직도 서민이 즐기는 영양식의 하나다.”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1980년대 초까지도 세겹살을 공식 용어로 삼겹살을 속칭으로 여긴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삼겹살구이를 먹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는 삼겹살구이 전문점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 1983년 10월 27일자에서 “유행의 중심지인 명동이나 삼겹살 골목인 삼각동”이라고 한 것을 보면 1980년대 초반에는 삼각동에 삼겹살구이집이 몰려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겹살은 1997년 IMF로 불경기가 이어지자 소위 ‘IMF 삼겹살’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대중화되었고 ‘삼겹살에 소주’는 한국 문화의 하나로 인식되어 갔다. 2000년대 들어서는 고급화 경향을 보이며 냉장 삼겹살을 선호하게 하게 되면서 각종 ‘브랜드’ 삼겹살이 등장하였다. 또한 ‘삽겹살집’이 ‘삼겹살 바’로 ‘리노베이션’ 되는 경향이 생기고 이에 따라 ‘삼겹살에 소주 한잔’도 ‘삼겹살에 와인 한잔’으로 바뀌었고 고객도 젊은 층과 여성이 늘어나며 삼겹살은 더욱 대중화되었다.
『경향신문』 1980년 11월 5일에 실린 소설 「나신의 제단」에서는 “연탄 화덕 위에다 은박지를 깐 두꺼운 쇠판을 얹어놓았고 (중략) 쇠판이 어느 정도 달구어졌는지 소녀는 돼지 삼겹살을 쇠판 위에 올려놓았다. 기름이 지글지글 탁탁 소리를 내며 탔다.”라고 초기 삼겹살구이 집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삼겹살은 지방이 많아 숯불이나 연탄에서 구우면 불과 연기가 심하게 발생하는데 1980년대 중반경부터 휴대용 가스레인지 사용이 보편화되어 일반 식당이나 가정, 그리고 야외에서도 삽겹살을 구워 먹는 것이 편리해지면서 삼겹살구이 확산에 일조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에는 ‘솥뚜껑 삼겹살’이 유행하였다. ‘솥뚜껑 삼겹살’은 "돼지기름은 경사진 솥뚜껑을 타고 흘러내리게 돼 고기가 느끼하지 않으며 바삭거리는 맛이 보통의 삼겹살구이와 다른 점”이라고 인식되면서 기존의 삼겹살구이와 차별화되었다.
2000년 3월 구제역 파동을 겪었던 경기도 파주시와 파주 축협이 돼지고기의 소비를 촉진하고 어려워진 양돈농가를 돕기 위해 삼겹살을 많이 먹자며 만든 3월 3일 ‘삼겹살 데이’가 무색할 정도로 짧은 기간에 삼겹살 소비가 급증하였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01년 11월부터 2개월 동안 전국 1만 2183가구를 조사해 발표한 ‘국민 식생활 · 식습관’을 보면, “3040대 남성의 지방 공급원 1위는 삼겹살, 30대 이상 남성들의 에너지 공급원 2위는 소주”라고 되어 있어 3040대 남성들은 소주와 삼겹살 섭취를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