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본(寫本)은 인쇄본과 상대되는 용어로, 붓이나 펜 등의 필사 재료를 이용하여 종이 등에 서사(書寫)한 책을 일컫는다. 서사본 또는 필사본으로 일컫기도 하며, 동의어로는 선사본(繕寫本), 초본(鈔本), 녹본(錄本) 등이 있다. 이 중 초본(鈔本)은 초본(抄本)이라고도 쓰며, 넓은 의미의 사본 이외에 베껴 쓴 책을 의미하므로 등사본(謄寫本) 또는 등본(謄本)의 뜻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다만 등본은 전체를 베껴 쓴 것이고 초본은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쓴 것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주민등록등본(住民登錄謄本)과 주민등록초본(住民登錄抄本)의 차이가 그 예시이다. 따라서 등사본은 필사본 중에서도 원본을 그대로 베껴서 복본이나 부본으로 만든 것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원본을 손으로 직접 베껴서 복본을 만들었다. 인쇄술은 목판 인쇄로부터 시작하여 동양에서는 금속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부터 크게 성행하였다. 반면 유럽의 경우, 금속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에는 주로 필사에 의존하여 복본을 제작하였다.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 인쇄술을 고안하기 이전, 중세 유럽의 수도원에서는 필사를 직업으로 하는 필경사가 있었다. 필경사들은 도서관과 필사실에서 끊임없이 서적을 베껴 썼다. 그들의 필사가 끝나면 이를 채식자(彩飾者)에게 넘겨 그림이나 기타 장식 등을 보충하여 책으로 제본하도록 하였다. 이런 필사본들 중에서 성경은 성직자와 귀족들에게 판매하여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방대한 분량의 성경은 한 권을 베껴 쓰는 데 수 개월에서 수 년이 걸리기도 하였으며, 가격 또한 비싸서 일반인은 쉽게 볼 수 없었다. 그러나 1455년 무렵,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술이 점차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어 대량 복제의 시대가 열리면서 일반인들도 성경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필경사의 수는 자연스럽게 감소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부터 인쇄술이 크게 성행하였지만, 일반인이 책을 소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원본을 정서(正書)하여 등사본으로 소장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등사본은 인찰공책판(印札空冊板)을 인출한 인찰공책지에 원문을 정서하거나, 광곽과 계선이 없는 공책에 곧바로 필사하여 만들었다. 인찰공책지에 필사된 서책으로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비롯하여 시문집(詩文集), 의학서, 병학서, 역사서, 지리서, 산학서, 한글 소설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