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룡양회는 1962년 설립된 시멘트 생산 회사로 쌍룡그룹의 모태가 된 기업이다. 1960년대 국가 주도 하의 본격적인 경제 개발이 시작되면서 산업 건설의 기본 자재인 시멘트 수요 급증을 배경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생산 규모를 급격히 확장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시멘트 회사로 성장하였다. 쌍룡그룹은 1997년 IMF 위기를 계기로 해체되었고, 쌍룡양회도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으나 현재도 1,500만 톤의 시멘트를 생산하여 전국 각지와 해외에 공급하는 한국 대표 시멘트 회사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1960년대 국가 주도 하의 본격적인 경제 개발이 시작되면서 산업 건설의 기본 자재인 시멘트 수요가 급증하였다. 정부 역시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서 신규로 시멘트 공장 4개를 신설하여 115만 톤의 증산을 계획하였다. 1950년대 금성방직을 경영하며 면방직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설립자 김성곤(金成坤)은 이러한 경제개발기 시멘트 수요와 정부 증산 정책에 주목하여 시멘트 공업으로 진출을 결정하였다. 1961년 12월 31일 금성방직 서울 본사에서 설립 발기인총회가 개최된 것을 시작으로 회사 설립과 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1962년 5월 14일 창립총회를 개최, '쌍룡양회공업주식회사'로 정식 출범하였다. 시멘트 생산 공장은 영월에 건설하였는데, 1964년 4월 준공되어 가동에 들어갔다. 연산 40만 톤 규모였다.
이후 급속하게 생산 능력을 확장해 나갔다. 주요한 것만 보더라도 1968년 10월에는 영월공장 4배 규모인 연산 170만 톤의 동해공장을 준공하였고, 1975년에는 연산 60만 톤의 대한양회를 흡수 합병하였다. 1980년 4월에는 기존 동해공장의 생산 능력을 연산 560만 톤으로 증설하였다. 이를 통해 시멘트 생산량은 최초 생산에 들어간 1964년 26만 톤 수준에서 1981년 700만 톤, 1987년 1,000만 톤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설립 30주년을 맞은 1990년대 초반 시멘트 생산 규모는 1,300만 톤까지 늘어났다.
한편 연관 사업으로의 확장도 추진하여 1969년에는 국내 최초로 건설용 레미콘 생산을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원효로에 레미콘 공장을 신설한 것을 시작으로 성수동, 안양, 부천, 서빙고 등에 추가로 공장이 건설되었다. 해외 사업 진출도 시작되어 1976년 싱가포르에 쌍용 싱가폴 시멘트 공장을 건설하였다. 1980년대부터는 신소재 개발 사업도 진행되었다. 1984년 파인 세라믹스(Fine Ceramic) 개발, 1991년 포항 페라이트 마그네트(Ferrite Magnet) 공장 준공 등이 그 성과이다.
1997년 IMF 위기를 계기로 쌍룡그룹이 해체의 수순을 밟으면서, 경영권이 여러 번 바뀌었다. 2021년에는 설립 이래의 사명인 쌍룡양회를 '쌍용C&E(SSangYong Cement&Environment)'로 바꾸었다. 2022년 창업 60주년을 맞았고, 동해공장과 영월공장을 양대 축으로 연간 1,500만 톤의 시멘트를 생산하여 전국 각지에 공급함과 동시에 해외에도 수출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본격적인 경제 개발과 산업화를 통해 고도 성장을 이뤄내는 과정에서 필수 기본 자재라고 할 수 있는 시멘트와 레미콘을 안정적으로 공급하여 그 일익을 담당하였다. 쌍룡양회도 한국의 경제 성장에 비례하여 급성장을 거듭하여 1990년대 국내 재계 서열 5~6위권의 거대 재벌 쌍룡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그룹은 IMF 위기를 계기로 해체되었으나 쌍룡양회는 현재도 여전히 한국 대표 시멘트 회사의 위상을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