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8월 18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목사인 아버지 백스터 베닝호프[Harry Baxter Benninghoff]의 영향을 받아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랭던[William R. Landon]의 후임으로 미군정청 하지 사령관의 정치고문을 담당하였다. 하지는 정치에 관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1945년 8월 18일 자로 제24군단 참모부에 국무부 대표로 베닝호프를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따른 조치로 베닝호프가 9월 3일 자로 사령부에 도착하면서 '연락관 겸 정치고문'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베닝호프는 극동 지역에 익숙하였고, 일본에서의 거주 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베닝호프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30년간 거주한 인물이었다.
베닝호프는 조속한 남한 점령을 주장하면서 미군 진주 이후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그러면서 일본인 관리의 대규모 해고와 조선인 관리 선발 과정에서 혼란 기간이 발생할 것을 예측하였다. 정치고문으로서 초기 보고서에서 "남한은 조금만 불똥이 튀어도 폭발할 것 같은 화약고"로 묘사하였다. 하지 중장을 도와 기존의 식민지 상태를 나타내는 ‘총독부’ 명칭을 '군사정부'로 바꾸고, 주요 인사의 직함 변경도 제안하였다. 1946년 1월 16일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를 앞두고 열린 예비회담에서 미국 측 대표단에 합류해 활동하였다. 이어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에 미국 측 대표 중 한 명으로 참석하였다.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발표된 공동코뮤니케 제4조에 의하여 조선 건국 문제의 중요한 사항인 38도선 철폐 문제를 논의하였다.
1995년 7월 10일 미국 플로리다주 브레바드 타이터스빌 자택에서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미국 플로리다주 브레버드 카운티 멜버른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