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8월 29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존스턴에서 태어났으며, 1913년 찰스턴대학을 졸업하였다.
1930년대 말 필리핀의 독립 준비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며, 알바니아의 공산화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이후 미군정청 책임자 하지 중장의 정치고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서울로 파견되었는데, 동아시아 정세 파악에 탁월한 인물이었다. 웨드마이어[Albert C. Wedemeyer]가 한국을 떠나면서 제이콥스만 받아들인다면 장제스[蔣介石]의 정치고문으로 추천하겠다고 제안한 일화도 있다. 동아시아 전략가로 명성이 높았던 웨드마이어의 인정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제이콥스는 초지일관 공산주의자들을 불법화하고 적극적인 경제, 군사 원조를 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드시 이승만을 중심으로 남한 정부를 수립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도 취하였다. "이승만은 신용할 만한 인물이 아니며, 우익은 누구든 미국의 축복을 받는 사람을 지지할 것이니, 그가 방해된다면 그를 제거하고 미국이 원하는 지도자를 선출하자"고 주장하였다.
제이콥스의 반공주의자적 입장은 제주4·3사건 보고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제이콥스가 1948년 6월 15일 제주도를 방문하여 제주의 최고 지휘관 로스웰 브라운[Rothell H. Brown] 대령의 보고를 바탕으로 작성한 「제주도 소요 사태에 대한 보고서」에는 "제주도민의 약 80%가 공산주의자와 관계되어 있거나, 공포 때문에 그들과 협조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 중장을 도와 유언비어 배포에 관한 경고와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선거를 독려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미소공동위원회가 무산되고 한국 문제가 유엔에 이관됨에 따라, 관련 절차에 따른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였다. 하지와 마찬가지로 완강한 반공주의자였고, 자부심이 강하면서 노련한 외교관이었다. 1971년 워싱턴 D.C.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