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2월 24일 미국 코네티컷주 콜링스빈시에서 태어났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41년 5월 델라웨어주 워밍튼의 제11군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같은 해 9월 제44사단 제49야전 포병여단으로 전임되었다. 1943년 2월 제7사단 포병대 지휘관으로 임명되면서 태평양 지역에 배치되었다. 1944년 2월 사단장으로 승진하였고, 같은 해 5월 소장으로 승진하였다. 태평양전쟁 당시 레이테섬과 오키나와 전투에서 성과를 올렸다.
해방 직후에는 남한 진주를 담당한 하지[John R. Hodge] 중장 지휘하의 미 육군 24군단 휘하 제7보병사단 사단장을 맡고 있었다. 이후 하지의 임명에 따라 1945년 9월 12일 자로 초대 군정장관[1945. 9. 12~1946. 1. 4]을 맡았다. 이때 조선총독이었던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해임되었다. 아놀드가 군정장관에 임명된 배경에는 진주 이전 제7사단의 담당 구역이 서울, 경기, 충청, 강원 지역이라는 이유가 크게 작용하였다.
아놀드는 군정장관 취임 후 한국민주당 김성수(金性洙)를 비롯한 11명의 한국인을 군정장관 고문으로 임명하였다. 1945년 10월 10일 자로 "남한에는 미군정 이외의 다른 정부가 있을 수 없다"는 강경 성명을 발표하였다. 좌익 중심의 조선인민공화국을 불법화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정부 자격 역시 부인하였다. 조선총독부 일본인 국장들을 해임하고 정무총감[Charles S. Harris], 재무국장[Charles J. Gordon], 광공국장[John C. Underwood], 농상국장[James Martin], 법무국장[Emery J. Woodall], 학무국장[Earl N. Lockard], 교통국장[Ward L. Hamilton], 체신국장[William J. Herlihy] 등을 새로 임명하였다. 러취 소장에게 군정장관직을 물려준 뒤 미소공동위원회 미국 대표단 초대 수석대표로 임명되었으며, 1946년 9월 23일 미국으로 귀국할 때까지 수석대표직을 수행하였다. 1973년 1월 4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