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정은 서울시헌장을 통해 서울을 ‘특별자유시’로 규정하고 경기도에서 분리하여 ‘ 지방자치제’를 시행하고자 하였다. 미군정이 구상한 특별자유시는 샌프란시스코, 버지니아 등에서 시행되고 있던 독립시[Independent city] 제도였다. 이것은 중앙정부에 직속되어 있으면서도 독자적으로 지방정부 운영이 가능함을 뜻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 실시되던 시장시회제를 서울시에 적용하려고 하였다. 시장시회제의 가장 큰 특징은 자치적인 시장과 시회의 운영이었다. 시장은 시민이 직접 투표하여 선출되고 그 임기는 대략 5년을 넘기지 않으며, 법령을 시행하고, 공무원을 주2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그리고 자치시 운영에 있어 중요한 시회는 평균 10여 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어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사무에 대한 승인 또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구였다.
미군정은 1946년 8월 15일 서울의 이름을 공식적으로 서울(Seoul)로 명확히 하였다. 서울시헌장 수여와 서울특별시 설치를 병행하며 자치권을 부여하고자 한 것이었다. 서울시헌장의 수여로 해방 직후 야기되었던 서울시정과 서울시 명칭의 혼란은 정리되었다.
서울시민들의 최대 관심은 자치 운영의 주체로서의 서울시 시장, 시의회 의원들을 선출하는 선거권이었다. 그러나 서울시 민선시장과 시의회 구성 그리고 이에 필요한 선거 실시와 관련된 법률 제정 등의 조치는 실시되지 않았다. 서울시헌장 공포 후 조치가 없었던 것에 대하여 서울시헌장의 공포는 서울시민의 미군정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고, 독립에 대한 열망을 반영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한편, 서울시는 서울시헌장의 공포와 함께 서울시 기구 개혁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서울시 행정기구의 개편은 보건후생부 기능의 강화 말고는 일제강점기 행정기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서울시 자치의 표방이 표면적이었던 이유는 미군정이 한국인에게 권한을 넘겨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한국인 시장과 관료들은 권한 행사에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제한은 자치도시에 대한 조치를 마련하는 데도 한계로 작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