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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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쟁은 고려·조선시대 국왕의 잘못된 명령과 행위에 대해 언관(言官)이 비판하는 행위이다. 원래 간쟁은 간관(諫官)이 수행하는 기능이지만, 대관(臺官)도 담당하였고 홍문관(弘文館)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간쟁은 직접 말로 하거나 문서를 작성하여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간쟁은 왕권의 잘못된 행사를 견제하는 성격이 있었다.
간쟁 (諫諍)
간쟁은 고려·조선시대 국왕의 잘못된 명령과 행위에 대해 언관(言官)이 비판하는 행위이다. 원래 간쟁은 간관(諫官)이 수행하는 기능이지만, 대관(臺官)도 담당하였고 홍문관(弘文館)이 참여하기도 하였다. 간쟁은 직접 말로 하거나 문서를 작성하여 올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간쟁은 왕권의 잘못된 행사를 견제하는 성격이 있었다.
고려 전기에, 동지공거, 우산기상시, 예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김자의 (金子儀)
고려 전기에, 동지공거, 우산기상시, 예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급사중은 고려시대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낭사(郎舍)에 속한 종4품 관직이다. 같은 품계의 중서사인(中書舍人)과 더불어 국왕의 정사에 대해 간쟁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신분이 좋은 사람만이 임명될 수 있는 청요직이었다. 원간섭기에 관제를 개혁하면서 첨의부 소속의 중사(中事)로 바뀌었다가 급사중의 명칭을 회복하는 명칭의 변화가 있었다.
급사중 (給事中)
급사중은 고려시대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낭사(郎舍)에 속한 종4품 관직이다. 같은 품계의 중서사인(中書舍人)과 더불어 국왕의 정사에 대해 간쟁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신분이 좋은 사람만이 임명될 수 있는 청요직이었다. 원간섭기에 관제를 개혁하면서 첨의부 소속의 중사(中事)로 바뀌었다가 급사중의 명칭을 회복하는 명칭의 변화가 있었다.
기거사인은 고려시대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낭사(郎舍)에 속하는 종5품 관직이다. 같은 품계의 기거주 · 기거랑과 더불어 국왕의 정사에 대해 간쟁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청빈한 사람만이 임명될 수 있는 청요직이었다. 원간섭기 관제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기거사인이 폐지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복구되고 관품도 정5품으로 높아졌다.
기거사인 (起居舍人)
기거사인은 고려시대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낭사(郎舍)에 속하는 종5품 관직이다. 같은 품계의 기거주 · 기거랑과 더불어 국왕의 정사에 대해 간쟁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청빈한 사람만이 임명될 수 있는 청요직이었다. 원간섭기 관제가 새롭게 만들어지면서 기거사인이 폐지되었다가 1356년(공민왕 5)에 복구되고 관품도 정5품으로 높아졌다.
보평청은 고려 후기에 국왕이 정사를 처리하던 장소이다. 궁궐의 편전을 가리킨다. 보평례를 행하였기에 보평청이라고 불렀다. 신료는 업무를 보고하여 결재를 받거나 정치의 잘잘못을 건의하였고, 국왕은 신료와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거나 국정에 대한 왕명을 반포하였다. 매월 2회 보평청에 행차하였고 옥사를 처리하거나 제석도량을 열기도 하였다.
보평청 (報平廳)
보평청은 고려 후기에 국왕이 정사를 처리하던 장소이다. 궁궐의 편전을 가리킨다. 보평례를 행하였기에 보평청이라고 불렀다. 신료는 업무를 보고하여 결재를 받거나 정치의 잘잘못을 건의하였고, 국왕은 신료와 국가 중대사를 논의하거나 국정에 대한 왕명을 반포하였다. 매월 2회 보평청에 행차하였고 옥사를 처리하거나 제석도량을 열기도 하였다.
대간은 고려 · 조선시대 탄핵과 감찰을 맡은 대관(臺官)과 간쟁과 봉박을 맡은 간관(諫官)의 합칭이다. 대간의 기원은 중국의 주(周)나라이다. 고려시대에 대관은 어사대(御史臺), 간관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낭사(郎舍)에 소속되었고, 조선시대에 대관은 사헌부(司憲府), 간관은 사간원(司諫院)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의 대간과 비교하여 조선시대의 대간은 직책과 정원은 줄었으나 감찰의 규모는 늘려 신료를 감찰하는 기능을 강화하였고, 간관보다 대관의 위상이 확실히 높았다. 국왕과 신료의 잘못된 언행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대간 (臺諫)
대간은 고려 · 조선시대 탄핵과 감찰을 맡은 대관(臺官)과 간쟁과 봉박을 맡은 간관(諫官)의 합칭이다. 대간의 기원은 중국의 주(周)나라이다. 고려시대에 대관은 어사대(御史臺), 간관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의 낭사(郎舍)에 소속되었고, 조선시대에 대관은 사헌부(司憲府), 간관은 사간원(司諫院)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의 대간과 비교하여 조선시대의 대간은 직책과 정원은 줄었으나 감찰의 규모는 늘려 신료를 감찰하는 기능을 강화하였고, 간관보다 대관의 위상이 확실히 높았다. 국왕과 신료의 잘못된 언행을 비판하고 견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봉박은 고려·조선시대 왕의 조지(詔旨) 내용이 합당하지 못할 경우 이를 봉함하여 되돌려 공박하는 제도이다. 고려 중서문하성낭사의 직무이며 권한의 하나였다. 중서문하성은 상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층의 재부(宰府)는 '성재(省宰)'·'재신(宰臣)'·'재상(宰相)'이라 호칭된 2품 이상관으로 조직되어 있었고 하층의 낭사는 '성랑(省郎)'·'간관(諫官)'이라 불리는 3품 이하관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봉박은 간관이 행사하는 직무 중의 하나이다.
봉박 (封駁)
봉박은 고려·조선시대 왕의 조지(詔旨) 내용이 합당하지 못할 경우 이를 봉함하여 되돌려 공박하는 제도이다. 고려 중서문하성낭사의 직무이며 권한의 하나였다. 중서문하성은 상하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상층의 재부(宰府)는 '성재(省宰)'·'재신(宰臣)'·'재상(宰相)'이라 호칭된 2품 이상관으로 조직되어 있었고 하층의 낭사는 '성랑(省郎)'·'간관(諫官)'이라 불리는 3품 이하관으로 조직되어 있었다. 봉박은 간관이 행사하는 직무 중의 하나이다.
대사간은 조선시대에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으로 정3품 당상관직이다. 사간원은 사헌부와 함께 양사 혹은 대간으로 지칭되며 언론을 담당하였는데, 대사간은 최고 책임자로서 사간 이하의 간관들을 통솔하며 논의를 주도하거나 내부 이견을 조정하였다. 1506년(연산군12)애 사간원이 폐지될 당시 대사간직 역시 폐지되었으나 중종반정 직후 복구되었다.
대사간 (大司諫)
대사간은 조선시대에 간쟁 기관인 사간원의 수장으로 정3품 당상관직이다. 사간원은 사헌부와 함께 양사 혹은 대간으로 지칭되며 언론을 담당하였는데, 대사간은 최고 책임자로서 사간 이하의 간관들을 통솔하며 논의를 주도하거나 내부 이견을 조정하였다. 1506년(연산군12)애 사간원이 폐지될 당시 대사간직 역시 폐지되었으나 중종반정 직후 복구되었다.
우헌납은 조선시대에 국왕에게 간쟁하는 일을 맡은 간관 계열의 직제이다. 고려시대 간쟁을 담당하던 중서문하성의 낭사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여러 차례의 직제 변경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1401년(태종 1)에 문하부가 혁파되고 사간원이 독립기구로 개편될 때 좌 · 우헌납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460년(세조 6) 좌헌납과 함께 혁파되었다가 1463년(세조 9)에 헌납 1인이 재설치되면서 우헌납의 직명이 사라지게 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사간원에 정5품의 헌납1좌로 정리되었다.
우헌납 (右獻納)
우헌납은 조선시대에 국왕에게 간쟁하는 일을 맡은 간관 계열의 직제이다. 고려시대 간쟁을 담당하던 중서문하성의 낭사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여러 차례의 직제 변경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1401년(태종 1)에 문하부가 혁파되고 사간원이 독립기구로 개편될 때 좌 · 우헌납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460년(세조 6) 좌헌납과 함께 혁파되었다가 1463년(세조 9)에 헌납 1인이 재설치되면서 우헌납의 직명이 사라지게 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사간원에 정5품의 헌납1좌로 정리되었다.
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종4품 관직.
중서사인 (中書舍人)
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종4품 관직.
좌헌납은 조선시대, 국왕에 대한 간쟁을 맡은 간관 계열의 직제이다. 고려시대 간쟁을 담당하던 중서문하성의 낭사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직제 변경이 여러 차례 이루어지는 가운데 1401년(태종 1)에 문하부가 혁파되고 사간원이 독립기구로 개편될 때 좌・우헌납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우헌납과 함께 혁파되었다가 1463년(세조 9)에 헌납 1인이 재설치되면서 우헌납의 직명이 사라지게 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사간원에 정5품의 헌납1좌로 정리되었다.
좌헌납 (左獻納)
좌헌납은 조선시대, 국왕에 대한 간쟁을 맡은 간관 계열의 직제이다. 고려시대 간쟁을 담당하던 중서문하성의 낭사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직제 변경이 여러 차례 이루어지는 가운데 1401년(태종 1)에 문하부가 혁파되고 사간원이 독립기구로 개편될 때 좌・우헌납이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 1460년(세조 6)에 우헌납과 함께 혁파되었다가 1463년(세조 9)에 헌납 1인이 재설치되면서 우헌납의 직명이 사라지게 되었다. 『경국대전』에는 사간원에 정5품의 헌납1좌로 정리되었다.
고려 후기에, 우정언, 시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선 (李僐)
고려 후기에, 우정언, 시어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좌사의대부, 밀직대언 등을 역임한 문신.
민변 (閔抃)
고려 후기에, 좌사의대부, 밀직대언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