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사중 ()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낭사(郎舍)에 속한 종4품 관직.
이칭
이칭
중사, 낭사
제도/관직
설치 시기
고려 전기
폐지 시기
고려 말기
소속
중서문하성
내용 요약

급사중은 고려시대에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낭사(郎舍)에 속한 종4품 관직이다. 같은 품계의 중서사인(中書舍人)과 더불어 국왕의 정사에 대해 간쟁하는 임무를 수행하였으며, 신분이 좋은 사람만이 임명될 수 있는 청요직이었다. 원간섭기에 관제를 개혁하면서 첨의부 소속의 중사(中事)로 바뀌었다가 급사중의 명칭을 회복하는 명칭의 변화가 있었다.

정의
고려시대,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 낭사(郎舍)에 속한 종4품 관직.
설치 목적

중서문하성 낭사(郎舍)의 관원이다. 고려의 최고 관부인 중서문하성에는 국정을 논의하는 2품 이상의 재신으로 구성된 재부(宰府)의 아래에 여러 참상 관직을 두었다. 이 중 낭사라고도 하는 급사중은 간쟁의 임무 등을 담당하였다.

임무와 직능

중서문하성 낭사의 일원으로 국왕의 불가한 일이나 잘못을 주3하는 직무를 담당하였다. 그와 더불어 관인의 임명, 상을 당한 관인의 재기용, 법을 고치고 새로운 법을 만드는 일 등의 여부를 조사하여 동의하는 서경(署經)의 권한도 있었다.

변천사항

성종 대에 급사중이 편제되어 있었고, 문종 대에 정한 관제에서는 정원을 1인으로 하고 품계는 종4품으로 하였다. 충렬왕 초에 관제가 격하되면서 첨의부주1가 되었고, 1308년(충렬왕 34)에 이마저 폐지되었다. 1352년(공민왕 1) 다시 중사를 설치하였다가 곧 폐지되었다.

낭사의 관직 가운데 산기상시 · 간의대부 · 사간 · 보궐 등은 관제의 변화에 따라 명칭이 바뀌었지만 그 후신은 계속되는데 반해, 급사중의 후신인 중사는 1308년에 폐지된 이후 다시 회복되지 못하였다.

한편, 급사중은 중서문하성 낭사의 구성원으로 국왕에게 간언하는 일을 맡았다. 청빈함이 요구되는 청요직(淸要職)에 해당하는 급사중의 위상은 같은 품계의 다른 관직보다 높았고 녹봉 등에서도 우대를 받았다.

급사중은 어사중승 · 중서사인 등과 더불어 급사중승(給舍中丞)으로 통칭되면서 관제의 계선으로서의 기능도 하였다. 이들 관직은 종4품, 경정전시과 제7과의 전시, 문종록제와 인종록제에서 200석의 녹봉액이 모두 같았다. 이런 것으로 보아 급사중승의 품계나 신분이 정4품 시랑보다 조금 낮고, 종4품 소경 · 소감보다는 조금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1046년(문종 1) 12월 문종의 생일을 맞아 건덕전에서 연회를 베풀면서 주2에서 급사중승 이상의 시신에게 참석하도록 하였고, 1116년(예종 34) 7월에는 국왕이 재추에서 급사중승 이상의 시신을 선정전으로 불러 변방의 일을 물어보았다.

의의 및 평가

급사중의 임무인 간쟁, 봉박, 서경 등은 모두 국왕의 권한을 견제하는 일이었으며, 간관은 위로부터 정3품 좌우산기상시로부터 종6품 좌우습유에 이르기까지 10명이 넘는 참상 관원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급사중 등은 품계와 관계없이 다른 낭사 소속 관원들과 함께 직무를 수행하였기 때문에 국왕권의 자의적 행사를 제약할 수 있었으며, 관직 자체의 정치 위상도 높았다고 여겨진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박재우, 『고려전기 대간제도 연구』(새문사, 2014)
박용운, 『『고려사』 백관지 역주』(신서원, 2009)
최정환, 『고려 · 조선시대 녹봉제도 연구』(경북대학교출판부, 1991)
박용운, 『고려 대간제도 연구』(일지사, 1980)

논문

변태섭, 「고려의 중서문하성에 대하여」(『고려정치제도사연구』, 일조각, 1971; 『역사교육』10, 역사교육연구회, 1967)
주석
주1

고려 시대에, 중서문하성에 속한 종사품 벼슬. 충렬왕 원년(1275)에 급사중을 고친 것이다.    우리말샘

주2

고려 시대에 둔, 재부(宰府)와 중추원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웃어른이나 임금에게 옳지 못하거나 잘못된 일을 고치도록 하는 말.    우리말샘

집필자
이진한(고려대 교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