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 ()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비서성과 보문각 등 문한 기구에 둔 권무관직(權務官職).
이칭
이칭
비서교감, 어서원교감, 보문각교감
제도/관직
설치 시기
고려 전기
폐지 시기
고려 말기
소속
비서감, 어서원, 청연각, 보문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교감은 고려시대, 비서성과 보문각 등 문한 기구에 둔 권무관직(權務官職)이다. 경적(經籍)과 축문(祝文)을 담당하는 비서성과 문한 관서인 보문각의 참외 권무직이다. 비서성과 보문각에 보관된 서적의 내용을 바로잡아 고치고, 국가 행사에 사용될 문서를 담당하였다. 관품이 없는 권무직이지만, 관서가 궁궐 내에 있었고, 하는 일이 학문적 지식이 필요하여 과거 급제자로 충원되었다.

정의
고려시대, 비서성과 보문각 등 문한 기구에 둔 권무관직(權務官職).
설치 목적

비서성청연각(淸讌閣) 등에 설치된 참외 권무관으로, 소속 관서의 경적을 관리하고 국가 행사에 쓰일 축문과 소장을 맡기기 위해 설치하였다.

임무와 직능

왕실 도서관의 기능을 하는 비서성에서 경적과 축문 · 소장을 짓는 일을 하였다. 한편 청연각에도 성격상 책이 많았으므로 이것을 관리하고 교감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므로 교감의 지위는 비록 권무관록(權務官祿)이 9품보다 적은 권무관이었지만, 관서가 궁궐 내에 있었고, 학문적 소양이 깊은 자들이 임명되는 긴요한 자리였다.

변천사항

1116년(예종 11) 8월에 예종은 대궐 안에 청연각을 짓고, 여기에 학사(學士) · 직학사(直學士) · 직각(直閣) 외에 교감 4인을 배속시켰다. 그중 2인은 어서원(御書院) 교감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2인은 실제의 관직을 관장하는 직사관(職事官)으로 겸하게 하였다.

다만, 청연각이 궐내에 있어 학사들의 직숙(直宿)에 어려움을 겪자, 1116년(예종 11) 11월에 청연각 옆에 따로 보문각을 설치하고 교감을 두었다. 1151년(의종 5) 보문각에 새로이 문첩소(文牒所)를 부설하였는데, 이때 문사(文士) 14인과 함께 보문각의 교감이 그 일을 전담하였다.

비서성은 995년(성종 14)에 고려 초기의 내서성을 고친 것이다. 비서성 교감은 문종 때 2인이 배속되었고, 1298년(충렬왕 24)에 비서성이 비서감(秘書監)으로 바뀌면서 어서원에 있던 유원관(留院官)이 교감에 병합되었다.

1308년(충렬왕 34)에 비서감을 낮추어 예문관(藝文館) 관할의 전교서(典校署)로 개칭할 때 정9품의 교감 1인을 두었으나, 뒤에 다시 올려 전교시(典校寺)가 될 때 교감은 종9품으로 낮아졌다. 1356년(공민왕 5)에 비서감으로 고칠 때 정9품, 1362년(공민왕 11) 종9품, 1369년(공민왕 18) 정9품이 되었다가 1372년(공민왕 21)에 다시 종9품으로 낮아졌다.

의의 및 평가

비서성이나 청연각의 교감이 모두 관서의 품관에 들지 못한 것은 교감의 일이 상시적이지 않았던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권무관의 관직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보문각 교감은 10석 10두, 비서교감은 8석 10두를 받아 10석의 9품 녹봉과 비슷한 것은 양 기관의 교감이 9품 정도에 준하는 중요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려는 관제의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해 교감을 권무관으로 설정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김용선 편, 『제5판 고려묘지명집성』(한림대학교출판부, 2012)
박용운, 『고려사 백관지 역주』(신서원, 2009)

논문

변태섭, 「고려시대의 문한직」(『김철준화갑기념 사학논총』, 지식산업사, 1983)
최제숙, 「고려 한림원고」(『한국사논총』 1, 1981)
周藤吉之, 「高麗前期の寶文閣-宋の諸殿學士 · 直學士 · 待制等との關連において-」(『朝鮮學報』 90, 1979; 『高麗朝官僚制の硏究』, 法政大出版局, 1980)
周藤吉之, 「宋代の三館 · 秘閣と高麗前期の三館と史館」(『高麗朝官僚制の硏究』, 法政大出版局,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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