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성제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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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법학전문학교는 1922년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관립 법관 양성 전문학교이다. 1911년에 설치된 경성전수학교가 「전문학교규칙」에 따라 전문학교급으로 운영되다가, 1922년 교명을 경성법학전문학교로 바꾸면서 공식적인 전문학교가 되었다. 경성전수학교와 달리 일본인 학생의 입학도 허용하였다. 1944년 경성고등상업학교와 통합하여 경성경제전문학교가 되었고, 8·15광복 직후 경성법학전문학교와 서울법정학교로 분리되었다. 이후 경성법학전문학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계열로 흡수되어 1946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이 되었다.
경성법학전문학교 (京城法學專門學校)
경성법학전문학교는 1922년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관립 법관 양성 전문학교이다. 1911년에 설치된 경성전수학교가 「전문학교규칙」에 따라 전문학교급으로 운영되다가, 1922년 교명을 경성법학전문학교로 바꾸면서 공식적인 전문학교가 되었다. 경성전수학교와 달리 일본인 학생의 입학도 허용하였다. 1944년 경성고등상업학교와 통합하여 경성경제전문학교가 되었고, 8·15광복 직후 경성법학전문학교와 서울법정학교로 분리되었다. 이후 경성법학전문학교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계열로 흡수되어 1946년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이 되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는 1916년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관립 의학전문학교이다. 1916년 4월 1일 칙령 제80호로 「조선총독부전문학교관제」가 발포되었고, 같은 해 조선총독부령 제27호로 「경성의학전문학교규칙」이 공포되어 설립되었다. 질병 진료에 관한 지식 기능을 구비한 의사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8·15광복 후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따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합병되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 안수경과 김해지, 김영흥 등이 1918년 졸업증서를 받아, 국내에서 의학교육을 받은 최초의 여의사들이 되었다.
경성의학전문학교 (京城醫學專門學校)
경성의학전문학교는 1916년 경성부에 설립되었던 관립 의학전문학교이다. 1916년 4월 1일 칙령 제80호로 「조선총독부전문학교관제」가 발포되었고, 같은 해 조선총독부령 제27호로 「경성의학전문학교규칙」이 공포되어 설립되었다. 질병 진료에 관한 지식 기능을 구비한 의사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8·15광복 후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에 따라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와 합병되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되었다. 안수경과 김해지, 김영흥 등이 1918년 졸업증서를 받아, 국내에서 의학교육을 받은 최초의 여의사들이 되었다.
중등교육기관 다음으로 연계되는 고등교육의 핵심 교육기관.
대학 (大學)
중등교육기관 다음으로 연계되는 고등교육의 핵심 교육기관.
『인문평론』은 1939년 9월 23일부터 1941년 4월까지 최재서가 발간한 문예잡지이다. 해외문학을 전공한 학문 엘리트들과 좌파 이데올로그들 및 역사철학자들의 글을 동시에 게재함으로써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담론 공간을 생산했다. 창간호의 권두언에는 일본이 주도하는 ‘동양 신질서’ 건설에 조선의 문학자들도 협력해야 할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신체제’에 투항하는 논리적 기반을 구축하는 한편, 좌우익 문인들의 ‘인민전선’을 모색하거나 파시즘으로의 이행을 지연시키려는 시도가 공존해 있다.
인문평론 (人文評論)
『인문평론』은 1939년 9월 23일부터 1941년 4월까지 최재서가 발간한 문예잡지이다. 해외문학을 전공한 학문 엘리트들과 좌파 이데올로그들 및 역사철학자들의 글을 동시에 게재함으로써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담론 공간을 생산했다. 창간호의 권두언에는 일본이 주도하는 ‘동양 신질서’ 건설에 조선의 문학자들도 협력해야 할 것을 요청하고 있지만, ‘신체제’에 투항하는 논리적 기반을 구축하는 한편, 좌우익 문인들의 ‘인민전선’을 모색하거나 파시즘으로의 이행을 지연시키려는 시도가 공존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민의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이재학 (李在鶴)
일제강점기 때, 단양군수 등을 역임하였으며,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민의원 부의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최재서는 일제강점기 친일문학 활동을 한 문예비평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영국 낭만주의와 주지주의 문학론을 조선에 소개하며 모더니즘 문학론을 이끌었다.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으로 전시체제기 국민문학을 선도했으며, 대동아문학자대회에서 조선 문인 대표로 발언을 한 친일 문인이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경성법학전문학교 강사로 활동했으며, 잡지 『인문평론』(1939)과 『국민문학』(1941)을 창간한 발행인이자 편집자이다. 해방 후에는 동아대학교, 연세대학교, 동국대학교, 한양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최재서 (崔載瑞)
최재서는 일제강점기 친일문학 활동을 한 문예비평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영국 낭만주의와 주지주의 문학론을 조선에 소개하며 모더니즘 문학론을 이끌었다. 조선문인협회 발기인으로 전시체제기 국민문학을 선도했으며, 대동아문학자대회에서 조선 문인 대표로 발언을 한 친일 문인이다.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경성법학전문학교 강사로 활동했으며, 잡지 『인문평론』(1939)과 『국민문학』(1941)을 창간한 발행인이자 편집자이다. 해방 후에는 동아대학교, 연세대학교, 동국대학교, 한양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해방 이후 내무부차관, 농림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정운갑 (鄭雲甲)
해방 이후 내무부차관, 농림부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해방 이후 상공부차관, 보건사회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
진의종 (陳懿鍾)
해방 이후 상공부차관, 보건사회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관료.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