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경신환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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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남인 (南人)
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소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이다. 숙종대 경신환국 이후 서인의 소장파가 훈척의 정치 개입을 옹호하는 노장파를 배척하며 청론(淸論)을 주장하는 가운데 성립되었다. 그러나 소론은 서인의 정체성이 분명하였기에 노론과 대립하면서도 국왕과 남인 견제를 위해 협력하였다. 후대로 갈수록 소론은 반(反) 노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숙종~영조대에 일시적으로 정국을 주도한 적도 있으나 대부분 비판 세력으로 존속하였다.
소론 (少論)
소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이다. 숙종대 경신환국 이후 서인의 소장파가 훈척의 정치 개입을 옹호하는 노장파를 배척하며 청론(淸論)을 주장하는 가운데 성립되었다. 그러나 소론은 서인의 정체성이 분명하였기에 노론과 대립하면서도 국왕과 남인 견제를 위해 협력하였다. 후대로 갈수록 소론은 반(反) 노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숙종~영조대에 일시적으로 정국을 주도한 적도 있으나 대부분 비판 세력으로 존속하였다.
임술삼고변은 1682년(숙종 8)에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 김석주·김익훈 일파가 남인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함정 수사로 3건의 역모를 고발한 사건이다. 김석주는 남인들의 역모를 고발한 익명서가 나오자 김익훈 등을 통해 남인들을 감시하면서 함정 수사하여 증거를 수집하였다. 김환은 허영·허새를 김익훈은 유명견을 김중하는 민암 등을 역모로 고발하였다. 이 중 허영·허새는 역모를 자백하였으나 나머지 2건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때문에 이 사건은 부도덕한 정치 공작으로 비판을 받았다. 기사환국 때 남인들의 보복이 이어졌다.
임술삼고변 (壬戌三告變)
임술삼고변은 1682년(숙종 8)에 경신환국으로 정권을 잡은 서인 김석주·김익훈 일파가 남인들을 소탕하기 위하여 함정 수사로 3건의 역모를 고발한 사건이다. 김석주는 남인들의 역모를 고발한 익명서가 나오자 김익훈 등을 통해 남인들을 감시하면서 함정 수사하여 증거를 수집하였다. 김환은 허영·허새를 김익훈은 유명견을 김중하는 민암 등을 역모로 고발하였다. 이 중 허영·허새는 역모를 자백하였으나 나머지 2건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밝혀졌다. 때문에 이 사건은 부도덕한 정치 공작으로 비판을 받았다. 기사환국 때 남인들의 보복이 이어졌다.
이정은 조선 후기 역모죄로 사사된 왕족·종실이다.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아들로, 복창군에 봉해져 동생 복선군, 복평군과 함께 ‘3복’이라 불렸다. 왕실 및 외교 관련 업무를 맡아 활약하였으나, 평소 행실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남인과 깊게 연결되어 숙종의 왕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홍수의 변’으로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에 섰으며, 경신환국 당시 역모죄로 사사당하였다.
이정 (李楨)
이정은 조선 후기 역모죄로 사사된 왕족·종실이다. 인조의 3남 인평대군의 아들로, 복창군에 봉해져 동생 복선군, 복평군과 함께 ‘3복’이라 불렸다. 왕실 및 외교 관련 업무를 맡아 활약하였으나, 평소 행실 문제로 논란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남인과 깊게 연결되어 숙종의 왕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홍수의 변’으로 정치적 갈등의 한복판에 섰으며, 경신환국 당시 역모죄로 사사당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부제학,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송규렴 (宋奎濂)
조선 후기에, 이조참의, 부제학, 대사성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승지, 강원도관찰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목임유 (睦林儒)
조선 후기에, 승지, 강원도관찰사,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1680년 허견(許堅)의 역모에 관련된 유혁연(柳赫然)의 옥사이다. 1680년(숙종 5) 4월 5일, 영의정 허적(許積)의 서자인 허견이 역모를 꾸며 복선군 이남을 추대하려 한다는 고변(告變)이 있었다. 관련자들에 대한 추국 과정에서 유혁연이 이천 둔군의 작대와 습조(習操), 호궤(犒饋) 등에 대한 추궁이 있었다. 9월 5일 유혁연은 ‘가까운 종실과 혼인’하였고 ‘둔군을 단속’하였다는 죄목으로 사사되었다. 정약용(丁若鏞)은 유혁연의 희생을 1589년(선조 22)의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비견하였다.
유혁연 옥사 (柳赫然 獄事)
1680년 허견(許堅)의 역모에 관련된 유혁연(柳赫然)의 옥사이다. 1680년(숙종 5) 4월 5일, 영의정 허적(許積)의 서자인 허견이 역모를 꾸며 복선군 이남을 추대하려 한다는 고변(告變)이 있었다. 관련자들에 대한 추국 과정에서 유혁연이 이천 둔군의 작대와 습조(習操), 호궤(犒饋) 등에 대한 추궁이 있었다. 9월 5일 유혁연은 ‘가까운 종실과 혼인’하였고 ‘둔군을 단속’하였다는 죄목으로 사사되었다. 정약용(丁若鏞)은 유혁연의 희생을 1589년(선조 22)의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비견하였다.
조선 후기에, 정언, 수찬,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인빈 (李寅賓)
조선 후기에, 정언, 수찬, 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식은 조선 후기 정언, 지평, 수찬, 부교리,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주로 숙종 대에 남인 계열 대간으로서 남인을 옹호하고 송시열 등 서인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활약하였다. 형벌의 남용, 군정의 문란함, 탐관오리들의 활동 등을 경계하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갑술환국 이후 소론 중심의 정국에서도 계속 기용되었다.
이식 (李湜)
이식은 조선 후기 정언, 지평, 수찬, 부교리, 황해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주로 숙종 대에 남인 계열 대간으로서 남인을 옹호하고 송시열 등 서인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활약하였다. 형벌의 남용, 군정의 문란함, 탐관오리들의 활동 등을 경계하는 등 그 능력을 인정받아 갑술환국 이후 소론 중심의 정국에서도 계속 기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