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구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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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창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에 두었던 5품 내지 6품 관직이다. 양계 지역에 파견되어 창고와 조세의 관리와 감독, 지방관의 포폄(褒貶), 지방 권세가의 비행 적발 등을 담당하였다. 1064년(문종 18)에 왕명에 따라 동북 양계의 감창사(監倉使)가 모두 제고사(祭告使)를 겸하였으며, 1173년(명종 3)에는 북방의 5도 즉, 북계(北界)의 운중도(雲中道)와 흥화도(興化道), 동계(東界)의 명주도(溟州道)·삭방도(朔方道) · 연해도(沿海道)의 감창사로 하여금 권농사(勸農使)를 겸하게 하였다가 뒤에 권농사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감창사 (監倉使)
감창사는 고려시대 양계(兩界)에 두었던 5품 내지 6품 관직이다. 양계 지역에 파견되어 창고와 조세의 관리와 감독, 지방관의 포폄(褒貶), 지방 권세가의 비행 적발 등을 담당하였다. 1064년(문종 18)에 왕명에 따라 동북 양계의 감창사(監倉使)가 모두 제고사(祭告使)를 겸하였으며, 1173년(명종 3)에는 북방의 5도 즉, 북계(北界)의 운중도(雲中道)와 흥화도(興化道), 동계(東界)의 명주도(溟州道)·삭방도(朔方道) · 연해도(沿海道)의 감창사로 하여금 권농사(勸農使)를 겸하게 하였다가 뒤에 권농사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고려 후기의 임시관청.
구급도감 (救急都監)
고려 후기의 임시관청.
신흥창은 고려시대 개경에 설치되어 왕실의 재정 관리와 빈민 구휼 등을 담당하였던 창고이다. 1090년(선종 7) 3월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고종 연간에 최이의 측근 박훤의 건의로 다시 설치되었다. 재건 후에는 주로 빈민을 구휼하거나 국가에서 백성들을 위무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신흥창 (新興倉)
신흥창은 고려시대 개경에 설치되어 왕실의 재정 관리와 빈민 구휼 등을 담당하였던 창고이다. 1090년(선종 7) 3월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고종 연간에 최이의 측근 박훤의 건의로 다시 설치되었다. 재건 후에는 주로 빈민을 구휼하거나 국가에서 백성들을 위무하는 등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고려 후기 구휼을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유비창 (有備倉)
고려 후기 구휼을 위하여 설치되었던 관서.
조선후기 정조 연간에 빈민과 구휼에 관한 사항을 연도별·도별로 기록한 보고서. 민정보고서.
혜정요람 (惠政要覽)
조선후기 정조 연간에 빈민과 구휼에 관한 사항을 연도별·도별로 기록한 보고서. 민정보고서.
김만덕은 조선후기 1795년 흉년과 관련된 상인이다. 1739년(영조 15)에 태어나 1812년(순조 12)에 사망했다. 제주도 출신으로, 상인이던 부친이 풍랑을 만나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죽자 외삼촌 집에 기거하며 어린 나이에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이재에 밝아 배를 만들어 육지와 미곡 무역을 하며 거상으로 성장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1795년에 자신의 재산으로 육지의 곡식을 구매하여 백성들을 구휼했다. 그녀의 선행이 조정에 보고되자 정조는, 출륙하여 금강산 관광과 궁궐 구경을 하고 싶다는 김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김만덕 (金萬德)
김만덕은 조선후기 1795년 흉년과 관련된 상인이다. 1739년(영조 15)에 태어나 1812년(순조 12)에 사망했다. 제주도 출신으로, 상인이던 부친이 풍랑을 만나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죽자 외삼촌 집에 기거하며 어린 나이에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이재에 밝아 배를 만들어 육지와 미곡 무역을 하며 거상으로 성장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1795년에 자신의 재산으로 육지의 곡식을 구매하여 백성들을 구휼했다. 그녀의 선행이 조정에 보고되자 정조는, 출륙하여 금강산 관광과 궁궐 구경을 하고 싶다는 김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환곡은 춘궁기에 곡식을 대여해 주고, 가을에 회수하던 구휼 제도였다. 평시에는 유사시를 대비한 비축곡이었고, 흉년에는 진휼곡으로서 기능하였다. 환곡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손실분을 보전하기 위해 대여곡의 10%를 이자로 받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뒤이어 모곡의 10%를 회록하여 경비에 사용하는 방식이 관행화되었다. 그 결과 환곡은 중앙과 지방 관청의 주요 재정원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환곡 운영이 점차 부세적 성격으로 변화하는 요인이었다. 환곡 제도의 변질은 19세기 중반 민란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
환곡 (還穀)
환곡은 춘궁기에 곡식을 대여해 주고, 가을에 회수하던 구휼 제도였다. 평시에는 유사시를 대비한 비축곡이었고, 흉년에는 진휼곡으로서 기능하였다. 환곡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손실분을 보전하기 위해 대여곡의 10%를 이자로 받는 제도가 시행되었고, 뒤이어 모곡의 10%를 회록하여 경비에 사용하는 방식이 관행화되었다. 그 결과 환곡은 중앙과 지방 관청의 주요 재정원으로 자리 잡았고, 이는 환곡 운영이 점차 부세적 성격으로 변화하는 요인이었다. 환곡 제도의 변질은 19세기 중반 민란의 주요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