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금서"
검색결과 총 6건
금서(禁書)는 지배 세력에 의해 출판이나 판매, 독서가 금지된 책 또는 글을 의미한다. 책을 불살라 버리거나 압수 및 은장(隱藏), 발행 금지, 판매 금지,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금지 등과 같은 처분을 받은 서책이 금서에 해당한다. 삼국시대부터 도참서가 백성을 혹세무민하는 불온서적으로 금기시된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비기류, 종교 서적, 소설, 개인 저서 또한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으면 금서로 낙인찍혔다. 일제강점기에 도서 및 출판 검열이 빈번했고, 해방 후 남북한에서도 사상과 통념에 반하는 책들은 금서가 되었다.
금서 (禁書)
금서(禁書)는 지배 세력에 의해 출판이나 판매, 독서가 금지된 책 또는 글을 의미한다. 책을 불살라 버리거나 압수 및 은장(隱藏), 발행 금지, 판매 금지,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금지 등과 같은 처분을 받은 서책이 금서에 해당한다. 삼국시대부터 도참서가 백성을 혹세무민하는 불온서적으로 금기시된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비기류, 종교 서적, 소설, 개인 저서 또한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으면 금서로 낙인찍혔다. 일제강점기에 도서 및 출판 검열이 빈번했고, 해방 후 남북한에서도 사상과 통념에 반하는 책들은 금서가 되었다.
『금서밀교대장경(金書密敎大藏經)』은 전체 130권의 금니 사경으로 추정되는 사경이다. 현재까지는 기록에 의할 뿐 실물이 발견된 적은 없으나 90권으로 조성된 목판본 『밀교대장』에 40권을 추가하여 금니로 사경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밀교대장』의 간행본 실물로는 『밀교대장』 권6과 『밀교대장』 권61이 전한다.
금서밀교대장경 (金書密敎大藏經)
『금서밀교대장경(金書密敎大藏經)』은 전체 130권의 금니 사경으로 추정되는 사경이다. 현재까지는 기록에 의할 뿐 실물이 발견된 적은 없으나 90권으로 조성된 목판본 『밀교대장』에 40권을 추가하여 금니로 사경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밀교대장』의 간행본 실물로는 『밀교대장』 권6과 『밀교대장』 권61이 전한다.
일제강점기에 최초의 근대적 영업 화랑을 개설한 서화가이자 사진가이다. 평안남도 중화(中和)의 농가에서 태어나 18세 되던 1885년 중국에 건너가 8년간 수학하였다. 1896년 궁내부(宮內府) 외사과(外事課) 주사(主事)로 임명되었다. 1913년 최초의 근대적 영업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觀)을 개설하여 명가(名家)의 작품을 진열하고 판매 및 주문에 응했으며 고서화(古書畵)도 취급하였다. 서화교육 교재로 『서법진결(書法眞訣)』(1915), 『육체필론(六體筆論)』(1915),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1916) 등을 만들기도 했다.
김규진 (金圭鎭)
일제강점기에 최초의 근대적 영업 화랑을 개설한 서화가이자 사진가이다. 평안남도 중화(中和)의 농가에서 태어나 18세 되던 1885년 중국에 건너가 8년간 수학하였다. 1896년 궁내부(宮內府) 외사과(外事課) 주사(主事)로 임명되었다. 1913년 최초의 근대적 영업 화랑인 고금서화관(古今書畵觀)을 개설하여 명가(名家)의 작품을 진열하고 판매 및 주문에 응했으며 고서화(古書畵)도 취급하였다. 서화교육 교재로 『서법진결(書法眞訣)』(1915), 『육체필론(六體筆論)』(1915),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1916) 등을 만들기도 했다.
『소무헌집』은 조선 후기 학자 금서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0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저자의 현손 금성수(琴性洙)가 편집·간행하였다. 6권 3책의 석인본(石印本)으로, 권말에 금성수가 쓴 발문이 있다. 시(詩) 181수를 비롯해 소(疏), 서(書), 서(序), 발(跋)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소무헌집 (素無軒集)
『소무헌집』은 조선 후기 학자 금서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0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저자의 현손 금성수(琴性洙)가 편집·간행하였다. 6권 3책의 석인본(石印本)으로, 권말에 금성수가 쓴 발문이 있다. 시(詩) 181수를 비롯해 소(疏), 서(書), 서(序), 발(跋) 등이 수록되어 있다.
천연당사진관은 1907년 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개설한 사진관이다. 당대의 유명 서화가인 김규진(1868∼1933)은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와 서울의 석정동(지금의 중구 소공동)의 자신의 집에 사진관을 개업했다. 김규진은 초상사진, 졸업사진, 일반인들의 기념사진·기록사진·결혼식 사진·장례식 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진이 이용되도록 사진을 보급하였다. 신문 광고를 하고, 여성사진사를 통해 여성의 사진관 이용을 유도하고, 교육생을 모집하여 사진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영업방식을 이용하여 사진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천연당사진관 (天然堂寫眞館)
천연당사진관은 1907년 서화가 해강 김규진이 개설한 사진관이다. 당대의 유명 서화가인 김규진(1868∼1933)은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우고 돌아와 서울의 석정동(지금의 중구 소공동)의 자신의 집에 사진관을 개업했다. 김규진은 초상사진, 졸업사진, 일반인들의 기념사진·기록사진·결혼식 사진·장례식 사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진이 이용되도록 사진을 보급하였다. 신문 광고를 하고, 여성사진사를 통해 여성의 사진관 이용을 유도하고, 교육생을 모집하여 사진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영업방식을 이용하여 사진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서포연보』는 김진규가 지은 『서포행장』을 바탕으로 김만중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이다. 현재 일본천리대학 금서문고에 소장되어 있으며 1책으로 김만중의 종손 또는 증손이 필사한 것이다. 김만중의 일생을 연도별, 월별로 기술하였으며 시문은 저술 계기와 정서를 서술하고 내용은 기록하지 않았다. 『당시성음합편』, 『송률』, 『고시선』, 『시선』 등 현전하지 않는 그의 시선집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32세에 천문역법 관련 서적인 『의상질의』, 『지구고증』 등을 편찬한 내용도 있다. 이 책은 서포 김만중과 그의 작품, 그리고 17세기 후반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서포연보 (西浦年譜)
『서포연보』는 김진규가 지은 『서포행장』을 바탕으로 김만중의 일생을 기록한 전기이다. 현재 일본천리대학 금서문고에 소장되어 있으며 1책으로 김만중의 종손 또는 증손이 필사한 것이다. 김만중의 일생을 연도별, 월별로 기술하였으며 시문은 저술 계기와 정서를 서술하고 내용은 기록하지 않았다. 『당시성음합편』, 『송률』, 『고시선』, 『시선』 등 현전하지 않는 그의 시선집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32세에 천문역법 관련 서적인 『의상질의』, 『지구고증』 등을 편찬한 내용도 있다. 이 책은 서포 김만중과 그의 작품, 그리고 17세기 후반 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