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경 금서술의 현손 금성수(琴性洙)가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금성수의 후지(後識)가 있다.
6권 3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성암고서박물관 등에 있다.
권수에 목록이 있고, 권1에 시 142수, 권2에 소(疏) 2편, 서(書) 29편, 권3에 잡저 19편, 권4에 서(序) 6편, 발(跋) 3편, 상량문 1편, 제문 17편, 애사 1편, 권5에 묘갈명 2편, 묘지명 1편, 행장 5편, 유사 12편, 권6에 부록으로 만사·제문·가장(家狀)·행장·묘갈명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의 「고산잡영(孤山雜詠)」은 모두 24수의 연작으로 대개 산수의 경치와 한거(閑居)의 감회를 읊은 것들이다. 「산거사시가흥(山居四時佳興)」은 4계절에 대해 읊은 것으로 한거자락(閑居自樂)의 정서가 담겨 있다. 「춘강(春江)」은 깊은 산골짜기 눈이 녹아내려 냇물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 봄이 시작되는 설렘을 은연중 표현한 것으로 계절적인 감각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세두가(洗頭歌)」는 7언 65구의 장편으로 두통이 심해 머리를 감아 정신을 맑게 한다는 내용의 가행체(歌行體)다.
소의 「영유의리소(嶺儒義理疏)」는 영남 유림을 대표해 장헌세자(莊獻世子)의 추존(追尊)을 건의한 것이며, 「청복훼철서원소(請復毁撤書院疏)」는 사액서원의 철거를 반대하는 내용의 상소문이다. 서(書) 가운데 유치명(柳致明)에게 보낸 서찰에는 태극론(太極論)에 관해 질문한 부분이 있고, 그밖에 여러 학자들과 주고받은 서찰에도 학문에 관해 의견을 교환한 것이 많다. 그러나 저자의 학문과 사상은 잡저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나타나 있다.
「사단칠정횡관과요의의(四端七情橫貫過了疑義)」는 이황(李滉)과 이이(李珥)의 학파간에 기본적인 견해 차이를 보이고 있는 사단칠정의 이기분배(理氣分配)에 관해서 이황의 설을 지지해 사단은 이발(理發), 칠정은 기발(氣發)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아울러 이발의 관념을 더욱 발전시켜 이(理)를 활물(活物)로 보는 이상정(李象靖)의 견해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태극도차의(太極圖箚疑)」는 『태극도설(太極圖說)』에 관해 유기진(柳箕鎭)과 토론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음양(陰陽)·동정(動靜)과 대대(對待)·유행(流行)관계를 설명한 내용이다. 「참동계의의(參同契疑義)」는 위백양(魏伯陽)의 『참동계』를 소개한 글로, 수양(修養)·단련(丹鍊)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