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기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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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신은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 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6년부터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으로 전국적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에서 기우만, 고광순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후 순창, 남원, 용담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1908년 6월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김동신 (金東臣)
김동신은 을사조약 이후 민종식 의진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906년부터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이후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으로 전국적 의병 운동이 일어나자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에서 기우만, 고광순과 함께 활동하였다. 이후 순창, 남원, 용담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1908년 6월에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일제강점기 때, 『남파유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일제의 창씨개명에 반대하여 자결한 학자·열사.
설진영 (薛鎭永)
일제강점기 때, 『남파유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일제의 창씨개명에 반대하여 자결한 학자·열사.
대한제국기 때,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은사금을 거절하여 체포되는 등 일제의 통치에 저항한 학자·독립운동가.
오계수 (吳繼洙)
대한제국기 때,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은사금을 거절하여 체포되는 등 일제의 통치에 저항한 학자·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부정척사론」, 『복재집』 등을 저술한 유학자.
조용숙 (趙鏞肅)
일제강점기 「부정척사론」, 『복재집』 등을 저술한 유학자.
일제강점기 때, 을미사변과 을사조약이 발생하자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위정척사파의 계보를 이어 『민재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박임상 (朴琳相)
일제강점기 때, 을미사변과 을사조약이 발생하자 의병으로 활동하였으며, 위정척사파의 계보를 이어 『민재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대한제국기 때, 기우만 의진, 기삼연 의진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하다가 이대극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후군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이화삼 (李化三)
대한제국기 때, 기우만 의진, 기삼연 의진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하다가 이대극을 대장으로 추대하고 후군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최익현 의진에서 항일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국권 침탈 이후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항의문을 작성하여 박해를 받다가 자결한 의병장·열사.
유건영 (柳健永)
대한제국기 때, 최익현 의진에서 항일의병활동을 전개하였으며, 국권 침탈 이후 창씨개명에 반대하는 항의문을 작성하여 박해를 받다가 자결한 의병장·열사.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1년에 간행한 시문집.
귤은재집 (橘隱齋集)
조선 후기부터 개항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유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1년에 간행한 시문집.
조선 후기에, 『정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양회갑 (梁會甲)
조선 후기에, 『정재집』 등을 저술한 학자.
일제강점기 『흠재문고』를 저술한 유학자.
조덕승 (曺悳承)
일제강점기 『흠재문고』를 저술한 유학자.
1935년 유학자 이종대가 유학과 도학에 관련한 역사적 자료를 모아 엮은 사전. 백과사전.
성현도덕록 (聖賢道德錄)
1935년 유학자 이종대가 유학과 도학에 관련한 역사적 자료를 모아 엮은 사전. 백과사전.
대한제국기 때, 유림의 대표로 성토문을 지어 일본의 만행을 꾸짖었으며, 말년에는 집 근처에 정사를 짓고 후학 양성을 위해 힘쓴 유학자.
공학원 (孔學源)
대한제국기 때, 유림의 대표로 성토문을 지어 일본의 만행을 꾸짖었으며, 말년에는 집 근처에 정사를 짓고 후학 양성을 위해 힘쓴 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