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남북연석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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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항섭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선전부장,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8년 경기 여주 출생으로 1919년 3·1운동 시기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해방 전까지 재중국한인청년동맹 위원, 한국독립당 조직책, 김구 주석의 판공비서 등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도 김구를 보좌하였고, 1948년 4월 한국독립당 대표단 5명과 함께 평양으로 향했다. 1950년 납북되었으며, 1958년 반당·반혁명 혐의로 체포된 후 4년 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87년 재북 인사에 대한 독립유공 표창의 일환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엄항섭 (嚴恒燮)
엄항섭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선전부장,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98년 경기 여주 출생으로 1919년 3·1운동 시기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해방 전까지 재중국한인청년동맹 위원, 한국독립당 조직책, 김구 주석의 판공비서 등으로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도 김구를 보좌하였고, 1948년 4월 한국독립당 대표단 5명과 함께 평양으로 향했다. 1950년 납북되었으며, 1958년 반당·반혁명 혐의로 체포된 후 4년 후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87년 재북 인사에 대한 독립유공 표창의 일환으로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신진당은 1946년 9월 남한 내 중간파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재미한족연합회·청우당·신한민족당 등 8개의 군소정당이 경운동 천도교 강당에서 창당하였다.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하였으며 중간파 노선을 지향하였다. 1948년 남한 단독 선거 실시에 반대하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 반일제투쟁위원회와 통일 지향 세력이 결집한 통일독립촉진회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김구 암살 이후 대한민국의 지지를 표방한 민족진영강화위원회에 참여하였다. 1950년에 중간파 정치 조직이 대한민국 정부 지지를 선언하는 상황에서 북한 괴뢰 집단과 정치적 관계가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신진당 (新進黨)
신진당은 1946년 9월 남한 내 중간파 세력이 결성한 정당이다. 재미한족연합회·청우당·신한민족당 등 8개의 군소정당이 경운동 천도교 강당에서 창당하였다.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하였으며 중간파 노선을 지향하였다. 1948년 남한 단독 선거 실시에 반대하며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였다. 반일제투쟁위원회와 통일 지향 세력이 결집한 통일독립촉진회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김구 암살 이후 대한민국의 지지를 표방한 민족진영강화위원회에 참여하였다. 1950년에 중간파 정치 조직이 대한민국 정부 지지를 선언하는 상황에서 북한 괴뢰 집단과 정치적 관계가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북한이 1998년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50주년 기념 중앙연구토론회에서 보낸 서한에서 제시한 5대 방침.
민족대단결 오대방침 (民族大團結 五大方針)
북한이 1998년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50주년 기념 중앙연구토론회에서 보낸 서한에서 제시한 5대 방침.
1946년에 건립된 북한의 대표적 극장.
모란봉극장 (牡丹▽峯劇場)
1946년에 건립된 북한의 대표적 극장.
해방 이후 좌우합작위원회 서무부장, 민족자주연맹 비서처 총무,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권태양 (權泰陽)
해방 이후 좌우합작위원회 서무부장, 민족자주연맹 비서처 총무,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