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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선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7년에 태어나 1990년에 사망했다. 20세 때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으로 활동하다가 신규식·신익희 등의 권유로 영국에 유학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대립했다. 미군정청·이승만정부에도 참여했으나 한국전쟁 중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이승만과 결별했다. 4·19 이후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5·16군사정변으로 하야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15만 7천표 차이로 패배하고 이후 야권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에 공헌했다.
윤보선 (尹潽善)
윤보선은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897년에 태어나 1990년에 사망했다. 20세 때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 의정원으로 활동하다가 신규식·신익희 등의 권유로 영국에 유학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을 주도하여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와 대립했다. 미군정청·이승만정부에도 참여했으나 한국전쟁 중 부산정치파동을 계기로 이승만과 결별했다. 4·19 이후 제4대 대통령에 선출됐으나 5·16군사정변으로 하야했다. 제5대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15만 7천표 차이로 패배하고 이후 야권 지도자로서 민주화운동에 공헌했다.
개헌안부결반대운동(改憲案否決反對運動)은 1952년에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가 국회를 압박하여 결과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전개한 대중집회와 시위이다. 1952년 1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큰 표 차이로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국회의원 소환, 국회 해산 등을 주장하는 집회와 시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1952년 5월 25일 임시 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는 부산정치파동으로 이어졌다.
개헌안 부결 반대운동 (改憲案 否決 反對運動)
개헌안부결반대운동(改憲案否決反對運動)은 1952년에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가 국회를 압박하여 결과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전개한 대중집회와 시위이다. 1952년 1월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국회에서 큰 표 차이로 부결되자, 이승만 정부는 이를 번복하기 위해 관제 조직들을 동원하여 국회의원 소환, 국회 해산 등을 주장하는 집회와 시위를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1952년 5월 25일 임시 수도 부산 일대에 계엄령이 선포되는 부산정치파동으로 이어졌다.
광주변호사회 회장 · 국회의원 ·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0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선거구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3·15정부통령 부정선거 무효소송단과 ‘4·19학생사건’ 민주당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 8월에는 장면 전 국무총리의 ‘국가보안법 위반 및 측정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 혐의 군사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1962년 9월 5일 서울 성모병원 입원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양병일 (梁炳日)
광주변호사회 회장 · 국회의원 · 헌법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 정치인이다. 1910년 전라남도 강진 출생으로,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전라남도 강진 선거구에 민주국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60년 3·15정부통령 부정선거 무효소송단과 ‘4·19학생사건’ 민주당 조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62년 8월에는 장면 전 국무총리의 ‘국가보안법 위반 및 측정범죄처벌에 관한 임시특례법 위반’ 혐의 군사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1962년 9월 5일 서울 성모병원 입원 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자유민주연합은 1995년 3월 30일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되어 2006년 3월 10일까지 존속한 정당이다. 충청도에 지지 기반을 두었으며 의원내각제를 당론으로 삼았다. 국민의 정부 시기인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공동 여당이었다.
자유민주연합 (自由民主聯合)
자유민주연합은 1995년 3월 30일 김종필을 중심으로 창당되어 2006년 3월 10일까지 존속한 정당이다. 충청도에 지지 기반을 두었으며 의원내각제를 당론으로 삼았다. 국민의 정부 시기인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공동 여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