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2007년 12월 7일, 충청남도 태안군 인근 해상에서 선박 충돌로 인해 다량의 기름이 유출하여 발생한 국내 최대의 해양오염 사고이다. ‘삼성-허베이스피리트 기름 유출 사고’로 불리기도 한다. 삼성예인선단이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을 인천광역시에서 경상남도 거제시로 끌고 가던 중 바다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하여 발생하였다. 국내에서 일어난 가장 심각한 해양오염 사고로 태안 군민에게 심각한 물질적,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혔다.
1993년부터 2012년까지 20년간 국내 연안에서는 6천 6백여 건(연평균 330건)의 기름 오염 사고가 있었고, 57,328㎘의 기름이 바다에 유출되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기름 유출 사고는 전반적으로 감소해 왔지만, 몇 번의 대량 기름 유출 사고는 우리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 있으며, 지금까지도 지역사회와 생태계에 피해를 주고 있다.
태안 기름 유출 사고는 우리가 기억하는 대형 기름 유출 사고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대부분의 기름 유출 사고는 사고를 일으킨 선박의 명칭으로 불렸는데, 태안 기름 유출 사고의 경우에는 피해 지역이 사고 이름으로 불려서 피해자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붙여졌다. 따라서 이 사고는 사고를 유발한 ‘삼성-허베이스피리트 기름 유출 사고’로 불리는 것이 옳다.
삼성-허베이스피리트 기름 유출 사고는 2007년 12월 7일, 삼성예인선단이 삼성중공업의 해상 크레인을 인천광역시에서 경상남도 거제시로 끌고 가던 중 바다에 정박해 있던 허베이스피리트호와 충돌하면서 발생하였다. 12월 7일 새벽, 태안 앞바다는 풍랑주의보가 발효 중이었으나 삼성예인선단 2척은 무리한 출항을 감행하였다. 새벽 5시경, 예인선단은 예인력을 상실한 채 풍랑에 밀리기 시작하였다.
5시 23분, 대산지방해양수산청 관제실은 예인선단이 정박 중이던 유조선에 접근하는 것을 보고, 두 차례 긴급 호출을 시도하였지만 교신이 되지 않았다. 6시 9분경, 유조선은 레이더로 예인선단이 접근 중임을 알았고, 대산관제센터에 운항 경로를 문의하였다. 대산관제센터는 예인선 선장의 개인 휴대전화번호를 찾아 “유조선이 정박 중이니 피해 운항하라.”라는 경고를 하였으나, 바람을 이기지 못한 예인선단은 유조선 3.5㎞ 부근까지 떠밀렸다.
6시 52분, 사고지점에서 2.6㎞ 정도 떨어진 곳에서 크레인을 연결한 예인강선이 끊어졌고, 크레인은 표류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도 예인선단은 긴급 경보나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결국 7시 6~15분경, 크레인과 유조선이 세 차례 충돌하였고, 저장탱크가 깨져서 원유가 유출되었다.
이는 사상 초유의 기름 유출 재난으로, 국내에서 가장 심각한 해양오염 사고로 기록되어 있다. 사고 당시 유출된 기름(1만 2547㎘)은 1995년 시프린스호 유조선 좌초 사건 때보다 2.5배 많으며, 1997년 이후 10년간 유출된 기름(1만 234㎘)보다도 많다. 삼성-허베이스피리트 기름 유출 사고는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 가던 지역 주민들에게 심각한 물질적 · 정신적 피해를 안겼다.
삼성-허베이스피리트 기름 유출 사고는 소통의 부재, 초기 방재와 갈등 해결 실패, 가해자의 책임 회피, 피해자 대책 회의 내부 문제, 쟁점을 외면한 언론, 증거 조작 등의 문제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정부는 겨울이라 확산 속도가 느려 피해가 적을 것으로 예측하였으나, 태안 앞바다는 조류가 빠르고 조수 간만의 차가 크며 넓은 조간대(潮間帶)를 가졌다. 그리고 그믐사리를 기점으로 그 정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12월 9일은 음력 그믐이었고, 그믐 이틀 전에 일어난 사고는 태안 해안 인근의 6개 시 · 군을 삽시간에 오염시켰다. 사고의 책임이 있는 삼성은 47일간 사과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으며, 증거를 조작하였다는 의혹이 드러나면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피해 주민들은 삼성의 무한 책임을 주장하였으나, 삼성은 ‘선박 소유주 책임 제한’ 등으로 피해액(약 7341억 원)의 1%도 지지 않았다(56억 원).
검찰과 경찰도 삼성에 대해 적극적인 조사를 벌이지 않았으며, 언론은 피해지를 이름에 붙이며 태안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남겼다. 문제의 쟁점을 보도하기보다 시민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비추는 데에만 급급하였다. 지역 주민들의 피해보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지역 주민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절망에 빠진 태안 군민에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원생, 일반 시민과 공무원들, 시민단체들의 도움으로 태안의 바다는 10년 만에 기적적으로 푸른빛을 찾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인간띠를 이루어 양동이로 기름을 퍼 나르고 바위에 낀 기름을 흡착포(吸着布)나 헌 옷 등으로 닦아 내어 제거하는 경이로운 봉사의 정신을 보였다.
사상 초유의 기름 유출 사고에도 불구하고 불과 10년 만에 오염에서 벗어난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대한민국 국민 국난 극복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태안 군민들은 사고로 인해 엄청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받았고 후유증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또한 사고가 난 태안 지역의 남성은 전립선암, 여성은 백혈병이 평균 발병치를 크게 웃도는 등 건강에도 큰 피해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