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노농당"
검색결과 총 5건
1948년 제헌국회에서 결성되어, 대한국민당에 흡수된 정당.
대한노농당 (大韓勞農黨)
1948년 제헌국회에서 결성되어, 대한국민당에 흡수된 정당.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유림 (柳林)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전진한 (錢鎭漢)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신정회는 제헌국회에서 활동한 군소 정파이다. 민족청년단을 기초로 1948년 결성된 청구회를 기반으로 한다. 민족청년단 해체, 일민구락부 탄생을 계기로 1949년 5월 7일 신정회가 탄생하였다. 대중 정치를 표방하며 월간지 『신정』을 발간하였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향상', '진정한 민족적 민주사회 건설'을 당면 과제로 내세웠다. 중간파의 남북 협상에 의한 평화통일론, 이승만 한민당의 북진통일론을 모두 비판하였다. 1950년 1월 신정회원 전원이 대한국민당으로 통합되었다. 국회 프락치 사건을 계기로 보수화하였으나 점진적이고 온건한 통일론을 주장하였다.
신정회 (新政會)
신정회는 제헌국회에서 활동한 군소 정파이다. 민족청년단을 기초로 1948년 결성된 청구회를 기반으로 한다. 민족청년단 해체, 일민구락부 탄생을 계기로 1949년 5월 7일 신정회가 탄생하였다. 대중 정치를 표방하며 월간지 『신정』을 발간하였다. '정치적 자유', '경제적 향상', '진정한 민족적 민주사회 건설'을 당면 과제로 내세웠다. 중간파의 남북 협상에 의한 평화통일론, 이승만 한민당의 북진통일론을 모두 비판하였다. 1950년 1월 신정회원 전원이 대한국민당으로 통합되었다. 국회 프락치 사건을 계기로 보수화하였으나 점진적이고 온건한 통일론을 주장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상해군정서 전북군무총장을 역임하고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 정치인이다. 1888년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마령면 평지리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1921년 조선독립군 청년단 의용군을 조직하다가 검거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진안군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49년 7월 대한노농당 소속으로 대한국민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오기열 (吳基烈)
일제강점기 때 상해군정서 전북군무총장을 역임하고 해방 이후 제헌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 정치인이다. 1888년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6일 마령면 평지리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했다. 1921년 조선독립군 청년단 의용군을 조직하다가 검거되어 1년간 복역했다. 1948년 5월 10일 실시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라남도 진안군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1949년 7월 대한노농당 소속으로 대한국민당과의 통합을 추진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8월 전주형무소에서 피살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