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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 남북국시대 당에 유학하고 통일신라의 학자, 문장가, 관료이다. 당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신라의 고유성과 토착성을 알리려고 하였다. 특히, 사람에 도가 있고 사람은 나라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여, 인간 중심의 보편성과 그에 따른 다양성을 강조하여 신라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다만, 생존 당시 신라가 쇠퇴하여 정치 이념과 사상은 신라 사회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이후 고려 국가의 체제 정비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장은 동아시아 문서의 형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어서 조선시대에도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최치원 (崔致遠)
최치원 남북국시대 당에 유학하고 통일신라의 학자, 문장가, 관료이다. 당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를 인정하면서도 신라의 고유성과 토착성을 알리려고 하였다. 특히, 사람에 도가 있고 사람은 나라의 차이가 없다고 주장하여, 인간 중심의 보편성과 그에 따른 다양성을 강조하여 신라의 세계화를 이끌었다. 다만, 생존 당시 신라가 쇠퇴하여 정치 이념과 사상은 신라 사회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이후 고려 국가의 체제 정비에 영향을 미쳤다. 그의 문장은 동아시아 문서의 형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어서 조선시대에도 특별히 주목을 받았다.
발해는 698~926년,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 동북 랴오닝성 ‧ 지린성 ‧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걸쳐 존속하며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이다. 대조영이 698년에 건국하였고, 초기 국명은 진국이다. 건국 초에는 신라와 교류하며 대아찬 직을 받았고, 이후 신라도를 설치하였다. 713년에 당나라에서 발해군왕을 받은 뒤 국명을 발해로 변경하였다. 제3대 문왕 대에 황제국 체제를 갖추었고, 9세기에는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925년 12월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 926년 초에 멸망하였다.
발해 (渤海)
발해는 698~926년,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 동북 랴오닝성 ‧ 지린성 ‧ 헤이룽장성과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걸쳐 존속하며 통일신라와 함께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이다. 대조영이 698년에 건국하였고, 초기 국명은 진국이다. 건국 초에는 신라와 교류하며 대아찬 직을 받았고, 이후 신라도를 설치하였다. 713년에 당나라에서 발해군왕을 받은 뒤 국명을 발해로 변경하였다. 제3대 문왕 대에 황제국 체제를 갖추었고, 9세기에는 해동성국으로 불렸다. 925년 12월에 거란의 대대적인 침공을 받고 926년 초에 멸망하였다.
「최고운전」은 16세기 이전에는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통일신라 말기의 실존 인물인 최치원의 일대기를 전래의 다양한 화소들을 수용하여 허구화하였으며, 전기적(傳奇的) 요소가 강한 영웅소설의 면모를 보인다.
최고운전 (崔孤雲傳)
「최고운전」은 16세기 이전에는 창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통일신라 말기의 실존 인물인 최치원의 일대기를 전래의 다양한 화소들을 수용하여 허구화하였으며, 전기적(傳奇的) 요소가 강한 영웅소설의 면모를 보인다.
남북국시대 때, 진위사로 당나라에 파견된 통일신라의 왕족.
김헌장 (金憲章)
남북국시대 때, 진위사로 당나라에 파견된 통일신라의 왕족.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사 충훈의 딸로 포정과 함께 미녀로 뽑혀 당나라에 파견된 왕족.
정원 (貞苑)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대사 충훈의 딸로 포정과 함께 미녀로 뽑혀 당나라에 파견된 왕족.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김악 (金渥)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김숙정 (金叔貞)
남북국시대 때, 숙위학생으로 당나라에서 유학하여 빈공과에 급제한 통일신라의 학자.
고려시대의 군관직.
과의 (果毅)
고려시대의 군관직.
망덕사는 남북국시대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었던 통일신라의 사찰이다. 사적 제7호이다. 679년에 당나라가 사천왕사 창건 사실을 확인하려 하자 이를 속이기 위해 임시로 지은 절이다. 685년 또는 692년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서 목탑터와 금당터, 강당터, 중문터, 회랑터 등이 남아 있어,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쌍탑가람 배치를 보여준다. 사천왕사 동·서 목탑지와 함께 통일신라 목탑 구조 및 쌍탑 기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낭산 망덕사 (狼山 望德寺)
망덕사는 남북국시대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에 있었던 통일신라의 사찰이다. 사적 제7호이다. 679년에 당나라가 사천왕사 창건 사실을 확인하려 하자 이를 속이기 위해 임시로 지은 절이다. 685년 또는 692년에 완공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동서 목탑터와 금당터, 강당터, 중문터, 회랑터 등이 남아 있어,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쌍탑가람 배치를 보여준다. 사천왕사 동·서 목탑지와 함께 통일신라 목탑 구조 및 쌍탑 기원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