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몽촌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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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토성.
서울 몽촌토성 (서울 夢村土城)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토성.
신석기·청동기시대의 토기로서 ‘구순각목토기(口脣刻目土器)’라고 부름.
골아가리토기 (골아가리土器)
신석기·청동기시대의 토기로서 ‘구순각목토기(口脣刻目土器)’라고 부름.
서울 풍납동 토성은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한성 백제시대 첫 도읍지인 하남 위례성으로 인정되는 유적이다. 한강에 잇닿은 남북 방향의 장타원형을 띠고 있으며, 현재 2.1㎞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을축년(1925) 대홍수 때 중요 유물이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발굴 조사 결과 판축 기법으로 축조된 거대한 토성일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왕궁 내 부속 건물로 추정되는 신전 건물지와 우물, 창고, 도로 및 관원들의 대형 주거지 등이 발견됨으로써 초기 백제시대의 왕성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서울 풍납동 토성 (서울 風納洞 土城)
서울 풍납동 토성은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한성 백제시대 첫 도읍지인 하남 위례성으로 인정되는 유적이다. 한강에 잇닿은 남북 방향의 장타원형을 띠고 있으며, 현재 2.1㎞ 정도의 성벽이 남아 있다. 을축년(1925) 대홍수 때 중요 유물이 발견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1997년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발굴 조사 결과 판축 기법으로 축조된 거대한 토성일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왕궁 내 부속 건물로 추정되는 신전 건물지와 우물, 창고, 도로 및 관원들의 대형 주거지 등이 발견됨으로써 초기 백제시대의 왕성임이 확실시되고 있다.
세발토기는 백제지역에서 출토되는 발이 세 개 달린 토기이다. 가장 전형적인 백제 토기로 뚜껑접시 형태의 둥그런 배신(杯身) 아래에 짧은 다리가 3개 달려 있어서 삼족토기라고도 한다. 한성기 초기에는 배신의 바닥이 매우 편평하며 바닥과 배신이 각을 이루는 형태로 서울 몽촌토성이나 풍납동 토성, 홍성 신금성 같은 생활유적에서만 출토되었다. 그 기능에 대해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사나 공헌용에 쓰이는 의기적인 성격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비기에는 부장되는 사례가 줄어들어 부여 왕궁지와 동남리 건물지와 같은 중요 생활유적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세발토기 (三足土器)
세발토기는 백제지역에서 출토되는 발이 세 개 달린 토기이다. 가장 전형적인 백제 토기로 뚜껑접시 형태의 둥그런 배신(杯身) 아래에 짧은 다리가 3개 달려 있어서 삼족토기라고도 한다. 한성기 초기에는 배신의 바닥이 매우 편평하며 바닥과 배신이 각을 이루는 형태로 서울 몽촌토성이나 풍납동 토성, 홍성 신금성 같은 생활유적에서만 출토되었다. 그 기능에 대해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제사나 공헌용에 쓰이는 의기적인 성격도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비기에는 부장되는 사례가 줄어들어 부여 왕궁지와 동남리 건물지와 같은 중요 생활유적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위례성은 한강 남쪽에 있었던 백제 건국 초기의 도성이다. 위례성이 한강 북쪽에서 한강 남쪽으로 이동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실제로는 처음부터 강 남쪽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위례’라는 명칭은 우리 · 울타리, 아리수 · 욱리하, 어라하 등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의미는 대체로 ‘큰 성’으로 보고 있다. 한수 남쪽의 위례성, 즉 하남위례성의 위치는 서울 풍납동 토성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위례성의 명칭은 4세기 중 · 후반부터 한성으로 변화하였다.
위례성 (慰禮城)
위례성은 한강 남쪽에 있었던 백제 건국 초기의 도성이다. 위례성이 한강 북쪽에서 한강 남쪽으로 이동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실제로는 처음부터 강 남쪽의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위례’라는 명칭은 우리 · 울타리, 아리수 · 욱리하, 어라하 등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의미는 대체로 ‘큰 성’으로 보고 있다. 한수 남쪽의 위례성, 즉 하남위례성의 위치는 서울 풍납동 토성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위례성의 명칭은 4세기 중 · 후반부터 한성으로 변화하였다.
동전무늬[錢文]를 표면에 새긴 도기.
전문도기 (錢文陶器)
동전무늬[錢文]를 표면에 새긴 도기.
해자는 성곽이나 고분의 둘레를 감싼 도랑이다. 주황(周隍), 구지(溝池), 외호(外壕), 호성하(護城河)로 불리기도 한다. 선사시대 취락을 감싼 환호에서 유래하였는데, 주로 성곽이나 고분에 조성되었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성곽을 방어하거나 식수를 확보하거나, 성 안의 물과 오물을 바깥으로 배출하거나, 선박을 이용하여 물자를 효과적으로 운반하기 위해 만들었다. 또한 대형 고분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묘역을 확정하기 위해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성을 축조하거나 고분을 조성할 때 주변에서 흙을 채취하면서 만들어진 웅덩이를 의도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해자 (垓子)
해자는 성곽이나 고분의 둘레를 감싼 도랑이다. 주황(周隍), 구지(溝池), 외호(外壕), 호성하(護城河)로 불리기도 한다. 선사시대 취락을 감싼 환호에서 유래하였는데, 주로 성곽이나 고분에 조성되었다.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성곽을 방어하거나 식수를 확보하거나, 성 안의 물과 오물을 바깥으로 배출하거나, 선박을 이용하여 물자를 효과적으로 운반하기 위해 만들었다. 또한 대형 고분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묘역을 확정하기 위해 조성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토성을 축조하거나 고분을 조성할 때 주변에서 흙을 채취하면서 만들어진 웅덩이를 의도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