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민주화추진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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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만은 해방 이후 9, 10, 12, 13대 국회의원, 국회행정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유학생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래 우익 청년운동, 반동·반탁 투쟁에 앞장섰다. 1950년에 정계에 투신하여 1973년 9대 선거에서야 당선되어 ‘칠전팔기’의 주인공으로 회자된 인물이다. 자유당 내 족청계 제거에 앞장섰으나 이기붕과 결별하면서 탈당했다. 13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야당에게 국회직이 배정되자 국회행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이승만의 건국 정통성 옹호운동을 벌였다.
박용만 (朴容萬)
박용만은 해방 이후 9, 10, 12, 13대 국회의원, 국회행정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1924년에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해방 직후 서울에서 유학생동맹위원장을 지낸 이래 우익 청년운동, 반동·반탁 투쟁에 앞장섰다. 1950년에 정계에 투신하여 1973년 9대 선거에서야 당선되어 ‘칠전팔기’의 주인공으로 회자된 인물이다. 자유당 내 족청계 제거에 앞장섰으나 이기붕과 결별하면서 탈당했다. 13대 총선 결과 여소야대로 야당에게 국회직이 배정되자 국회행정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말년에는 이승만의 건국 정통성 옹호운동을 벌였다.
제8·9·10·12·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박일 (朴一)
제8·9·10·12·14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제9대, 10대, 12대, 13대 국회의원, 정무제1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김동영 (金東英)
제9대, 10대, 12대, 13대 국회의원, 정무제1장관 등을 역임한 정치인.
신기하는 해방 이후 12·13·14·15대 국회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법조인이다. 1941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196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민주화 관계 인사 600여 명에 대한 무료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광주 동구 지역구 의원으로 12·13·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85년 5월 개원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폭로하였으며, 1995년 12월 ‘5·18특별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되는 데 기여하였다.
신기하 (辛基夏)
신기하는 해방 이후 12·13·14·15대 국회의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법조인이다. 1941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1969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80년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19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여 민주화 관계 인사 600여 명에 대한 무료변론을 맡아 인권변호사라는 호칭을 얻었다. 광주 동구 지역구 의원으로 12·13·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85년 5월 개원 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폭로하였으며, 1995년 12월 ‘5·18특별법’이 여야합의로 통과되는 데 기여하였다.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국민당 최고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조연하 (趙淵夏)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국민당 최고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홍영기는 육군본부 병무차감,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8년에 출생하여 1999년에 사망했다.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출신으로 1943년 일본 도호쿠대학교 법문학부를 졸업 후 1948년 육군 법무관(중위)으로 임관하였다. 재야 법조인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1960년 전북 순창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1965년(6대), 1971년(8대), 1988년(13대), 1992년(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4년 제14대 국회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홍영기 (洪英基)
홍영기는 육군본부 병무차감,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등을 역임한 법조인·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8년에 출생하여 1999년에 사망했다.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출신으로 1943년 일본 도호쿠대학교 법문학부를 졸업 후 1948년 육군 법무관(중위)으로 임관하였다. 재야 법조인으로 정치에 입문하여 1960년 전북 순창에서 민주당 소속으로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었다. 1965년(6대), 1971년(8대), 1988년(13대), 1992년(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94년 제14대 국회 부의장에 선출되었다.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1986년 5월 3일 신한민주당 인천 개헌추진위원회 경기·인천지부결성대회가 노동자·학생들의 무력시위에 의해 무산된 사건.
인천5·3민주항쟁 (仁川五三民主抗爭)
1986년 5월 3일 신한민주당 인천 개헌추진위원회 경기·인천지부결성대회가 노동자·학생들의 무력시위에 의해 무산된 사건.
개헌서명운동(改憲署名運動)은 1986년에 신한민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주도로 전개된 대통령직선제 개헌 추진 운동이다. 1985년 2 · 12총선 승리로 제1야당이 된 신한민주당은 민주화추진협의회과 함께 1986년부터 1천만 개헌서명운동에 돌입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순차적으로 개헌추진위원회 결성대회 및 현판식이 진행되었고, 종교계와 지식인들의 공개서명 및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이에 정부와 여당도 한발 물러서 국회 개헌특위 설치에 합의하였지만, 여야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며 결국 1987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조치’가 나왔다.
개헌서명운동 (改憲署名運動)
개헌서명운동(改憲署名運動)은 1986년에 신한민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주도로 전개된 대통령직선제 개헌 추진 운동이다. 1985년 2 · 12총선 승리로 제1야당이 된 신한민주당은 민주화추진협의회과 함께 1986년부터 1천만 개헌서명운동에 돌입하였다. 전국 각지에서 순차적으로 개헌추진위원회 결성대회 및 현판식이 진행되었고, 종교계와 지식인들의 공개서명 및 시국선언이 잇따랐다. 이에 정부와 여당도 한발 물러서 국회 개헌특위 설치에 합의하였지만, 여야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며 결국 1987년 4월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조치’가 나왔다.
김영삼은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이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후 제5~10,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민주화운동 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재임 당시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등 개혁정책을 추진해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임기 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부정적 평가 속에 임기를 마쳤다.
김영삼 (金泳三)
김영삼은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정치인이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후 제5~10,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민주화운동 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하였다. 재임 당시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실시,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등 개혁정책을 추진해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임기 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부정적 평가 속에 임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