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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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동이와 영팔이」는 1963년 박영진이 그린 약동이를 주인공으로 한 학원 명랑만화이다. 약동이와 영팔이 외 친구들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우정을 쌓으며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이야기를 그렸다. 1960년대 명랑만화 시대를 이끈 작품 중 하나로 총 40권의 시리즈를 출간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명랑만화 특유의 단순한 그림체이지만, 1960년대 시골과 도시의 소소한 일상과 풍경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당시의 시대와 문화사 연구에도 중요한 작품이다.
약동이와 영팔이
「약동이와 영팔이」는 1963년 박영진이 그린 약동이를 주인공으로 한 학원 명랑만화이다. 약동이와 영팔이 외 친구들이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우정을 쌓으며 어려움을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이야기를 그렸다. 1960년대 명랑만화 시대를 이끈 작품 중 하나로 총 40권의 시리즈를 출간하며 전성기를 보냈다. 명랑만화 특유의 단순한 그림체이지만, 1960년대 시골과 도시의 소소한 일상과 풍경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당시의 시대와 문화사 연구에도 중요한 작품이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1946년 3월 5일 아마추어 예술사진가들이 서울에서 결성한 해방 이후 최초의 사진가 단체이다. 해방 이후 예술사진의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예술사진 공모전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한편 영향력 확대를 도모코자 했다. 1957년 대한사진예술가협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사진예술연구회 (朝鮮寫眞藝術硏究會)
조선사진예술연구회는 1946년 3월 5일 아마추어 예술사진가들이 서울에서 결성한 해방 이후 최초의 사진가 단체이다. 해방 이후 예술사진의 발전을 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예술사진 공모전을 통해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한편 영향력 확대를 도모코자 했다. 1957년 대한사진예술가협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선예술사진전람회는 1947년 7월, 조선사진예술연구회가 '예술사진'을 중심으로 한국사진을 재건하려는 목표로 개최한 공모전이다. 1948년에 2회 전, 1949년에 3회 전을 개최하였으며, 신진 작가들을 배출하는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 열린 최대 규모의 공모전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예술사진과 큰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내용과 형식을 답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조선예술사진전람회 (朝鮮藝術寫眞展覽會)
조선예술사진전람회는 1947년 7월, 조선사진예술연구회가 '예술사진'을 중심으로 한국사진을 재건하려는 목표로 개최한 공모전이다. 1948년에 2회 전, 1949년에 3회 전을 개최하였으며, 신진 작가들을 배출하는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 열린 최대 규모의 공모전이었으나 일제강점기 예술사진과 큰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내용과 형식을 답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1937년경 박영진을 초대 회장으로 서울의 아마추어 사진가 23명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전쟁으로 인해 사진 활동이 원활하지 않던 1943년 해산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한국인만으로 결성된 단체로서 민족 정신을 바탕으로 일본인 사진인들에 대항하고자 한다는 사진 단체 결성의 의지를 다지는 한편 사진예술 발전을 도모하며 회원들의 이론 및 실기 향상을 위해 활발한 사진활동을 이어나갔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 (京城―寫眞俱樂部)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1937년경 박영진을 초대 회장으로 서울의 아마추어 사진가 23명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전쟁으로 인해 사진 활동이 원활하지 않던 1943년 해산했다. 경성아마추어사진구락부는 한국인만으로 결성된 단체로서 민족 정신을 바탕으로 일본인 사진인들에 대항하고자 한다는 사진 단체 결성의 의지를 다지는 한편 사진예술 발전을 도모하며 회원들의 이론 및 실기 향상을 위해 활발한 사진활동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