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발안_장터_만세운동"
검색결과 총 9건
강태성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향남면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1919년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수원 지역 독립운동은 크게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일제는 이를 억압하고자 4월 15일 제암리에 나타나 주민들을 제암리교회에 가두고 방화하는 한편,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강태성은 이때 제암리교회에서 부인과 함께 순국하였다.
강태성 (姜太成)
강태성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향남면에서 태어나 성장하였고, 1919년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수원 지역 독립운동은 크게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일제는 이를 억압하고자 4월 15일 제암리에 나타나 주민들을 제암리교회에 가두고 방화하는 한편,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강태성은 이때 제암리교회에서 부인과 함께 순국하였다.
김덕용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수원 지역 독립운동이 확산되며 격렬해지자 일본 군인은 대대적인 보복에 나섰다. 4월 15일 제암리에 나타난 일제수비대는 주민들을 제암리교회에 가두고 방화하는 한편,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이때 김덕용도 주민들과 함께 순국하였다.
김덕용 (金德用)
김덕용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수원 지역 독립운동이 확산되며 격렬해지자 일본 군인은 대대적인 보복에 나섰다. 4월 15일 제암리에 나타난 일제수비대는 주민들을 제암리교회에 가두고 방화하는 한편, 총격을 가하는 만행을 저질렸다. 이때 김덕용도 주민들과 함께 순국하였다.
김세열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으며, 향남면 발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성열의 동생으로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세열을 포함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세열 (金世烈)
김세열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수원군 팔탄면 고주리에서 태어났으며, 향남면 발안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성열의 동생으로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세열을 포함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연방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화수리에서 태어나 관직 생활을 하다가 을사늑약 이후 낙향하여 고향 지사들과 국채보상운동과 사립학교설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우정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후원하는 등 지역사회 명망가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3일 발안에 도착한 일본군에 의해 집에서 살해되었다.
김연방 (金然昉)
김연방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우정면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화수리에서 태어나 관직 생활을 하다가 을사늑약 이후 낙향하여 고향 지사들과 국채보상운동과 사립학교설립운동에 참여하였다. 우정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후원하는 등 지역사회 명망가로 활동하였다. 1919년 4월 13일 발안에 도착한 일본군에 의해 집에서 살해되었다.
김정헌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나 동학에 입문하여 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천도교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후, 청년들 모아 개혁운동을 도모하였다. 1919년 4월 5일 발안 장터에서 시위행진을 하였고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자 일본군은 4월 15일 제암리, 고주리, 수촌리 등지에서 학살을 저질렀다. 이때 김정헌은 제암리교회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정헌 (金正憲)
김정헌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향남면 제암리에서 태어나 동학에 입문하여 농민운동에 참여하였다. 천도교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후, 청년들 모아 개혁운동을 도모하였다. 1919년 4월 5일 발안 장터에서 시위행진을 하였고 시위가 격렬하게 전개되자 일본군은 4월 15일 제암리, 고주리, 수촌리 등지에서 학살을 저질렀다. 이때 김정헌은 제암리교회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주남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수원군 팔탄면에서 태어났으며,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김성열이다.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고주리에서 김주남 가족 6명이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김주남 (金周男)
김주남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수원군 팔탄면에서 태어났으며,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救國同志會)를 조직한 독립운동가 김성열이다.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는 등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고주리에서 김주남 가족 6명이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되었다.
김주업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를 조직한 김성열이었다.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수원경찰서 등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김주업은 고주리에서 가족 6명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김주업 (金周業)
김주업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한 독립운동가이다. 큰아버지는 화성 지역 천도교 지도자 김흥렬, 중부는 구국동지회를 조직한 김성열이었다. 3월 31일 향남면 발안 장터 만세시위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동참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수원경찰서 등에서 온갖 고문을 당하다가 풀려났다. 제암리 학살사건 이후 김주업은 고주리에서 가족 6명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였다.
김흥렬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전교사와 순회교사로서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일깨웠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가족 6명이 마을 주민들과 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이후 검거되어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다.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 김흥렬 일가 6명은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김흥렬 (金興烈)
김흥렬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천도교 전교사와 순회교사로서 청년들에게 항일의식을 일깨웠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가족 6명이 마을 주민들과 만세운동에 참가하였고, 이후 검거되어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다. 4월 15일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 김흥렬 일가 6명은 무참하게 살해당하였다.
김흥복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일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가하였다. 김흥복의 가족은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으나,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흥복을 비롯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
김흥복 (金興福)
김흥복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향남면 발안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1일 발안 장터 만세운동에 일가족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참가하였다. 김흥복의 가족은 발안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후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한 후 풀려났으나, 제암리 학살사건을 저지른 일본 수비대에 의해 고주리에서 김흥복을 비롯한 일가족 6명은 무참하게 살해되어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