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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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남로당이 주도한 총파업, 경찰·서북청년단의 검속·탄압, 남로당의 무장봉기, 계엄령선포 및 중산간 지역 초토화, 6·25전쟁으로 인한 예비검속 및 즉결처분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희생되었다. 사건은 1954년에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막을 내렸다.
제주4·3사건 (濟州四三事件)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다수의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경찰이 발포하여 민간인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이후 남로당이 주도한 총파업, 경찰·서북청년단의 검속·탄압, 남로당의 무장봉기, 계엄령선포 및 중산간 지역 초토화, 6·25전쟁으로 인한 예비검속 및 즉결처분 등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다수 희생되었다. 사건은 1954년에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되면서 막을 내렸다.
노비는 전근대 신분제 사회의 최하층 신분이다. 노는 남자종, 비는 여자종을 말한다. 전쟁, 형벌, 부채 등으로 충원되었으며 대대로 세습되었다. 국가 소유의 공노비와 개인 소유의 사노비로 구분되며, 노동력 제공이나 신공 납부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노비의 유산, 도망이 증가하는 가운데 신공 부담은 감소하였으며 합법적인 면천의 길은 확대되었다. 내시노비 혁파와 노비 세습제 폐지, 신분제 혁파를 차례로 거치면서 노비제도는 소멸하였다.
노비 (奴婢)
노비는 전근대 신분제 사회의 최하층 신분이다. 노는 남자종, 비는 여자종을 말한다. 전쟁, 형벌, 부채 등으로 충원되었으며 대대로 세습되었다. 국가 소유의 공노비와 개인 소유의 사노비로 구분되며, 노동력 제공이나 신공 납부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노비의 유산, 도망이 증가하는 가운데 신공 부담은 감소하였으며 합법적인 면천의 길은 확대되었다. 내시노비 혁파와 노비 세습제 폐지, 신분제 혁파를 차례로 거치면서 노비제도는 소멸하였다.
궁예는 남북국시대 태봉국의 제1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재위 기간은 901년~918년이다. 10여세 때 세달사에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하다가 세력을 키워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했다.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에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다. 한때 전국의 2/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세력을 떨쳤다.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를 두어 국가체제를 정비했지만, 후반에 미륵신앙에 기반을 둔 신정적 전제주의 정치를 추구하다가 918년 6월에 왕건을 지지하던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 4인의 정변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궁예 (弓裔)
궁예는 남북국시대 태봉국의 제1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재위 기간은 901년~918년이다. 10여세 때 세달사에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하다가 세력을 키워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했다.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에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다. 한때 전국의 2/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세력을 떨쳤다.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를 두어 국가체제를 정비했지만, 후반에 미륵신앙에 기반을 둔 신정적 전제주의 정치를 추구하다가 918년 6월에 왕건을 지지하던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 4인의 정변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조선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간 한반도에 존재한 왕조 국가이다. 국왕의 밑에서 양반관료들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어 정치를 행하였다. 농업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경제체계가 강하였고, 양반 중심 세습신분제 사회였으나,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속에 신분제는 차츰 이완되어 갔다. 유교 문화의 위세가 계속 강해지는 가운데 서민과 여성들은 고유성을 강인하게 지켜 나갔다.
조선 (朝鮮)
조선은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간 한반도에 존재한 왕조 국가이다. 국왕의 밑에서 양반관료들이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어 정치를 행하였다. 농업경제를 중심으로 하는 자연경제체계가 강하였고, 양반 중심 세습신분제 사회였으나, 상품화폐경제의 발달 속에 신분제는 차츰 이완되어 갔다. 유교 문화의 위세가 계속 강해지는 가운데 서민과 여성들은 고유성을 강인하게 지켜 나갔다.
대동법은 공물에 대한 현물납을 폐지하고 그 대신에 지역별로 쌀·베·돈으로 납부하게 한 세금 및 재정 제도이다. 광해군 즉위 초에 선혜법(宣惠法)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도에서 제도의 시험적 형태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것과 대동법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대동법은 각 관에 책정된 유치미와 여미의 몫이 상납미보다 많았던 것에 비해서 선혜법은 지방 수요에 책정된 몫이 상납미의 1/8에 불과했다. 1654년(효종 5)에 조익(趙翼) · 김육(金堉) 등이 대동법 시행 세칙을 수정·보완하여 충청도에서 다시 실시하였고, 대동법은 그 성공적인 결과를 토대로 각도에 순조롭게 확대되었다. 대동법의 주관 관청인 선혜청(宣惠廳)은 대동세를 일괄 수취하여 공인(貢人)에게 공가(貢價)를 지급하여 정부가 필요한 물품을 상납하게 했다. 대동법은 백성들에게 규정된 세액만을 징수하여 민생을 안정시켰고, 지방 재정을 처음으로 확립했으며, 상업 발전을 촉진시켰다.
대동법 (大同法)
대동법은 공물에 대한 현물납을 폐지하고 그 대신에 지역별로 쌀·베·돈으로 납부하게 한 세금 및 재정 제도이다. 광해군 즉위 초에 선혜법(宣惠法)이라는 이름으로 경기도에서 제도의 시험적 형태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것과 대동법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대동법은 각 관에 책정된 유치미와 여미의 몫이 상납미보다 많았던 것에 비해서 선혜법은 지방 수요에 책정된 몫이 상납미의 1/8에 불과했다. 1654년(효종 5)에 조익(趙翼) · 김육(金堉) 등이 대동법 시행 세칙을 수정·보완하여 충청도에서 다시 실시하였고, 대동법은 그 성공적인 결과를 토대로 각도에 순조롭게 확대되었다. 대동법의 주관 관청인 선혜청(宣惠廳)은 대동세를 일괄 수취하여 공인(貢人)에게 공가(貢價)를 지급하여 정부가 필요한 물품을 상납하게 했다. 대동법은 백성들에게 규정된 세액만을 징수하여 민생을 안정시켰고, 지방 재정을 처음으로 확립했으며, 상업 발전을 촉진시켰다.
과전법(科田法)은 고려 말 토지 제도 개혁 과정에서 제정된, 조선 초기 관직자들에 대한 수조지 분급을 규정한 제도이다. 고려 말에 사전이 혁파되고 과전법이 제정되는 과정은 조선 건국의 가장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 초기 토지 제도의 종합적인 면모를 넓은 의미에서 과전법 체제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과전법 (科田法)
과전법(科田法)은 고려 말 토지 제도 개혁 과정에서 제정된, 조선 초기 관직자들에 대한 수조지 분급을 규정한 제도이다. 고려 말에 사전이 혁파되고 과전법이 제정되는 과정은 조선 건국의 가장 중요한 계기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 초기 토지 제도의 종합적인 면모를 넓은 의미에서 과전법 체제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1920년부터 일제가 조선을 자국의 식량공급기지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쌀 증식정책.
산미증식계획 (産米增殖計劃)
1920년부터 일제가 조선을 자국의 식량공급기지로 만들기 위해 추진한 쌀 증식정책.
조선 후기 삼정(三政)의 잘못을 바로잡는 임시 관서.
삼정이정청 (三政釐整廳)
조선 후기 삼정(三政)의 잘못을 바로잡는 임시 관서.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이다. 한자의 음이나 새김을 차용할 때 한자 원래의 의미를 살려서 하는 방식과 한자 원래의 의미를 버리고 음과 새김의 발음만을 차용하여 표음문자인 우리말을 기록하는 방식이 있었다. 설총이 창작했다고 하는데, 개인이 창작했다기보다는 그때까지 발달해 온 차자표기법을 설총이 정리하여 경서를 우리말로 주해하고 새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훈민정음 창제 후에는 그 존재가치를 상실했으나 일부 서리계층에서 사용하던 이서지체라는 문체에 남아 국한문혼용체로 대체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이두 (吏讀)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이다. 한자의 음이나 새김을 차용할 때 한자 원래의 의미를 살려서 하는 방식과 한자 원래의 의미를 버리고 음과 새김의 발음만을 차용하여 표음문자인 우리말을 기록하는 방식이 있었다. 설총이 창작했다고 하는데, 개인이 창작했다기보다는 그때까지 발달해 온 차자표기법을 설총이 정리하여 경서를 우리말로 주해하고 새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훈민정음 창제 후에는 그 존재가치를 상실했으나 일부 서리계층에서 사용하던 이서지체라는 문체에 남아 국한문혼용체로 대체될 때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개성상인은 고려·조선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국내 상업과 국제 무역을 담당한 상인이다. 개성상인들은 개성부 내의 시전(市廛), 전국적 행상(行商) 활동, 해양을 무대로 한 선상(船商) 활동,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 등을 토대로 성장하였으며, 나아가 인삼 재배와 홍삼 제조업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다. 개성상인들은 송도사개치부법으로 불리는 복식 부기법, 사환(使喚) 교육과 차인(差人)의 지방 진출 등을 지원하는 제도, 신용을 기초로 하는 금융 제도인 시변제(時邊制) 등 합리적이고 장기 지속 가능한 상업 관습을 창출하였다.
개성상인 (開城商人)
개성상인은 고려·조선시대 개성을 중심으로 국내 상업과 국제 무역을 담당한 상인이다. 개성상인들은 개성부 내의 시전(市廛), 전국적 행상(行商) 활동, 해양을 무대로 한 선상(船商) 활동, 중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 무역 등을 토대로 성장하였으며, 나아가 인삼 재배와 홍삼 제조업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다. 개성상인들은 송도사개치부법으로 불리는 복식 부기법, 사환(使喚) 교육과 차인(差人)의 지방 진출 등을 지원하는 제도, 신용을 기초로 하는 금융 제도인 시변제(時邊制) 등 합리적이고 장기 지속 가능한 상업 관습을 창출하였다.
고려 초에 설치되었던 진휼기관.
흑창 (黑倉)
고려 초에 설치되었던 진휼기관.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에 따라 이성이 결합하여 부부가 되는 사회현상. 결혼.
혼인 (婚姻)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에 따라 이성이 결합하여 부부가 되는 사회현상. 결혼.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 한 쪽이 사망하거나 법률상의 원인이 발생하였을 때 재산적 또는 친족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계승하는 제도.
상속 (相續)
일정한 친족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 한 쪽이 사망하거나 법률상의 원인이 발생하였을 때 재산적 또는 친족적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계승하는 제도.
호적은 국가가 국민의 신분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호주를 기준으로, 한 가에 속하는 사람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공문서이다. 국가권력이 역역과 부세를 부과·징수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얻기 위해 실시한 호구조사 결과를 기록한 행정적 문서로 시작되었다. 신분제도의 확립과 더불어 고려·조선시대에는 신분 그 자체를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현재는 호구 파악이 주민등록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호적제도는 가와 가 안에서의 개인의 신분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제도로서만 운영되다가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호적은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되었다.
호적 (戶籍)
호적은 국가가 국민의 신분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호주를 기준으로, 한 가에 속하는 사람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공문서이다. 국가권력이 역역과 부세를 부과·징수하기 위한 기초자료를 얻기 위해 실시한 호구조사 결과를 기록한 행정적 문서로 시작되었다. 신분제도의 확립과 더불어 고려·조선시대에는 신분 그 자체를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현재는 호구 파악이 주민등록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호적제도는 가와 가 안에서의 개인의 신분관계를 증명하기 위한 제도로서만 운영되다가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호적은 가족관계등록부로 대체되었다.
조선 후기의 화가 정선(鄭敾)이 그린 산수화.
정선 필 인왕제색도 (鄭敾 筆 仁王霽色圖)
조선 후기의 화가 정선(鄭敾)이 그린 산수화.
조선후기 수학자 홍정하가 동양의 여러 수학서의 해법을 정리하고 응용하여 1724년에 저술한 수학서.
구일집 (九一集)
조선후기 수학자 홍정하가 동양의 여러 수학서의 해법을 정리하고 응용하여 1724년에 저술한 수학서.
평균수명의 증가에 따라 총인구 중에 차지하는 고령자(노인)의 인구비율이 점차로 많아지는 사회현상.
고령화 (高齡化)
평균수명의 증가에 따라 총인구 중에 차지하는 고령자(노인)의 인구비율이 점차로 많아지는 사회현상.
조소앙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의군부 부주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58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수료 후 일본에 유학했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부주석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았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고 1950년 총선에서 전국최다득표자로 선출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조소앙 (趙素昻)
조소앙은 일제강점기 대한독립의군부 부주석, 임시정부 국무위원, 한국독립당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사상가이다. 1887년(고종 24)에 태어나 1958년에 사망했다. 성균관 수료 후 일본에 유학했다. 1913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하여 부주석에 취임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했고, 김구 등과 한국독립당을 창당했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골자로 한 삼균주의를 제창하여 임시정부 정강정책의 바탕으로 삼았다. 광복 후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주장했고 1950년 총선에서 전국최다득표자로 선출되었으나 한국전쟁 중 납북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
적산가옥 (敵産家屋)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해 한반도에서 철수하면서 정부에 귀속되었다가 일반에 불하된 일본인 소유의 주택.
용언은 일반적으로 동사와 형용사를 포괄하여 부르는 품사분류의 상위개념이다. 형태론적으로는 활용을 하고, 통사론적으로는 주로 서술어의 구실을 수행한다. 동사는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형용사는 사물의 상태나 성질을 나타낸다. 또 다양한 어미와 연결하여 문장의 거의 모든 성분이 될 수 있다. 용언에는 앞뒤 문장 사이의 논리적인 연결관계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화자나 청자 또는 제삼자 사이의 신분이나 지위의 상하관계, 서법이나 시제 등 다양한 문법적인 관계가 나타나기 때문에 문장을 이루는 데서 중추적인 구실을 한다. 일정한 활용형 뒤에서만 쓰이는 용언은 보조용언이라 한다.
용언 (用言)
용언은 일반적으로 동사와 형용사를 포괄하여 부르는 품사분류의 상위개념이다. 형태론적으로는 활용을 하고, 통사론적으로는 주로 서술어의 구실을 수행한다. 동사는 사물의 움직임을 나타내고, 형용사는 사물의 상태나 성질을 나타낸다. 또 다양한 어미와 연결하여 문장의 거의 모든 성분이 될 수 있다. 용언에는 앞뒤 문장 사이의 논리적인 연결관계가 나타날 뿐만 아니라, 화자나 청자 또는 제삼자 사이의 신분이나 지위의 상하관계, 서법이나 시제 등 다양한 문법적인 관계가 나타나기 때문에 문장을 이루는 데서 중추적인 구실을 한다. 일정한 활용형 뒤에서만 쓰이는 용언은 보조용언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