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본당"
검색결과 총 3건
공세리성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 교구 소속 성당이다. 박해기 이후 충청도에서 설립된 최초의 본당이다. 1890년에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었으나 1895년에 공세리로 이전되면서 공세리본당이 되었다. 드비즈 신부는 옛 공세창 자리를 확보하여 192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축하였다. 공세리성당은 숨어 있던 천주교회를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긴 박해의 종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성당이다.
공세리성당 (貢稅里聖堂)
공세리성당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에 있는 천주교 대전 교구 소속 성당이다. 박해기 이후 충청도에서 설립된 최초의 본당이다. 1890년에 예산 간양골에서 시작되었으나 1895년에 공세리로 이전되면서 공세리본당이 되었다. 드비즈 신부는 옛 공세창 자리를 확보하여 1922년에 현재의 성당을 건축하였다. 공세리성당은 숨어 있던 천주교회를 공공연하게 드러냄으로써 긴 박해의 종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성당이다.
김관택(金觀澤)은 일제강점기 성모학원 교사, 해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천주교 전교사 및 총회장, 민족운동가이다. 1929년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32년 강서군 마산본당의 성모학원 교사로 임용되었으며, 1937년 가톨릭조선사에 입사하였고, 평양교구의 전교사(傳敎師)로 평안도 각지를 순회 전교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정주군 부위원장, 조선민주당 정주군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7년에 월남하였다. 가톨릭 구제회의 한국지부 지배인, ‘성 라자로원’ 창설자, 평양교구 신우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김관택 (金觀澤)
김관택(金觀澤)은 일제강점기 성모학원 교사, 해성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천주교 전교사 및 총회장, 민족운동가이다. 1929년 평양 광성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1932년 강서군 마산본당의 성모학원 교사로 임용되었으며, 1937년 가톨릭조선사에 입사하였고, 평양교구의 전교사(傳敎師)로 평안도 각지를 순회 전교하였다. 해방 이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정주군 부위원장, 조선민주당 정주군 위원장을 역임하였고, 1947년에 월남하였다. 가톨릭 구제회의 한국지부 지배인, ‘성 라자로원’ 창설자, 평양교구 신우회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정남규는 일제강점기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총회장이자 사회 사업가이다. 1899년에 경성학당 한문과에 입학하였고, 1900년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3월 6일까지 수학하였다. 1910~1920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 재임하였고, 1920~1923년에는 경성부 서기, 속(屬)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1923년에는 경성대목구의 재단법인 설립에 참여하였다. 1924년에 애긍회를 조직하여 1950년 9월 17일에 정치보위부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될 때까지 노인들을 돌보았다.
정남규 (鄭南奎)
정남규는 일제강점기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총회장이자 사회 사업가이다. 1899년에 경성학당 한문과에 입학하였고, 1900년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3월 6일까지 수학하였다. 1910~1920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 재임하였고, 1920~1923년에는 경성부 서기, 속(屬)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1923년에는 경성대목구의 재단법인 설립에 참여하였다. 1924년에 애긍회를 조직하여 1950년 9월 17일에 정치보위부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될 때까지 노인들을 돌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