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사진관_경성_사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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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사진사협회는 1926년 서울의 북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한국인 사진사들이 조직한 결사체이다. 이 단체의 결성은 직업윤리와 매체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인 사진단체의 첫 등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남촌에서 주로 활동한 일본인 사진관들에 대항해 회원 상호 간의 연구 활동을 통해 사진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고, 사진표현 능력을 향상시키며, 사진교육을 실시하고 후학을 양성하여 사진의 저변을 확산하려고 노력했다.
경성사진사협회 (京城寫眞師協會)
경성사진사협회는 1926년 서울의 북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한국인 사진사들이 조직한 결사체이다. 이 단체의 결성은 직업윤리와 매체의 가치를 바탕으로 하는 한국인 사진단체의 첫 등장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남촌에서 주로 활동한 일본인 사진관들에 대항해 회원 상호 간의 연구 활동을 통해 사진에 대한 지식을 확보하고, 사진표현 능력을 향상시키며, 사진교육을 실시하고 후학을 양성하여 사진의 저변을 확산하려고 노력했다.
사진사는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을 가르쳐준 헤이무라 도쿠베이의 이름에 붙여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른 명칭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지운영은 한국에 처음 사진을 도입한 선각자 중의 한명이었고, 대한제국 황실사진가를 지낸 해강 김규진도 천연당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이름에 자연스럽게 '사진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 이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사 (寫眞師)
사진사는 지운영이 일본에서 사진을 가르쳐준 헤이무라 도쿠베이의 이름에 붙여 존경의 뜻을 담아 부른 명칭으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지운영은 한국에 처음 사진을 도입한 선각자 중의 한명이었고, 대한제국 황실사진가를 지낸 해강 김규진도 천연당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자신의 이름에 자연스럽게 '사진사'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 이후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가를 총칭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태평양사진관은 사진사 민충식이 현성린과 함께 1930년 서울의 종로 낙원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개업 이후 5년간 운영된 사진관은 서울에서 사진 값이 비싸기로도 유명했고 가장 큰 시설을 갖춘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초상사진 영업을 주로 했지만 일본 헤이번샤가 펴낸 36권짜리 『세계지리풍속대계』에 서울 전경 사진을 찍어 제공하는 등 사진기록 작업도 했던 사진관이었다.
태평양사진관 (太平洋寫眞館)
태평양사진관은 사진사 민충식이 현성린과 함께 1930년 서울의 종로 낙원동에 개업한 사진관이다. 개업 이후 5년간 운영된 사진관은 서울에서 사진 값이 비싸기로도 유명했고 가장 큰 시설을 갖춘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초상사진 영업을 주로 했지만 일본 헤이번샤가 펴낸 36권짜리 『세계지리풍속대계』에 서울 전경 사진을 찍어 제공하는 등 사진기록 작업도 했던 사진관이었다.
독립사진관은 1930년 사진사 박만달이 서울 종로 관철동에 개업해서 운영한 사진관이다. 사진관 시설과 사진사의 실력이 좋아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 고객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탄압의 상징인 종로경찰서 부근에 '독립'이란 상호를 달고 영업해 일본 경찰과 충돌이 잦았다. 한국 사진사들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사진관이었다.
독립사진관 (獨立寫眞館)
독립사진관은 1930년 사진사 박만달이 서울 종로 관철동에 개업해서 운영한 사진관이다. 사진관 시설과 사진사의 실력이 좋아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일본인 고객도 많았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탄압의 상징인 종로경찰서 부근에 '독립'이란 상호를 달고 영업해 일본 경찰과 충돌이 잦았다. 한국 사진사들의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사진관이었다.
박필호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사진가이다.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으며,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등에서 고문을 맡는 한편,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진 이론과 사진사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 다수의 글을 남겼다.
박필호 (朴弼浩)
박필호는 경성사진사협회에 참여하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한 사진가이다. 1920년대 초에 경성일보 주최 공모전에서 입선하였으며, 1925년 종로3가에 연우사진관을 개업하면서 영업 사진사의 길로 들어섰다. 1926년 경성사진사협회 창립에 참여하였으며, 각종 공모전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해방 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한국사진협회 등에서 고문을 맡는 한편,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사진 이론과 사진사 연구에도 열정을 보여 다수의 글을 남겼다.
이홍경은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최초의 사진사이다. 남편 채상묵에게 사진을 배워 서울 관철동에서 1921년 5월 부인사진관을 개설하였다. 1924년 사진관 이름을 조선사진관으로 변경하였으며, 1926년부터는 조선사진관을 양도하고 인사동에서 경성사진관을 운영하였다. 실명으로 활동한 조선 최초의 여성 사진사이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또한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의 초대 교사로 초빙되어 여성 사진 교육의 선구적 역할도 하였다.
이홍경 (李弘敬)
이홍경은 일제강점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최초의 사진사이다. 남편 채상묵에게 사진을 배워 서울 관철동에서 1921년 5월 부인사진관을 개설하였다. 1924년 사진관 이름을 조선사진관으로 변경하였으며, 1926년부터는 조선사진관을 양도하고 인사동에서 경성사진관을 운영하였다. 실명으로 활동한 조선 최초의 여성 사진사이며, 여성으로서 사진관을 운영한 것도 그녀가 최초였다. 또한 근화여학교 여자사진과의 초대 교사로 초빙되어 여성 사진 교육의 선구적 역할도 하였다.
사진업조합은 1922년 사진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성의 사진업자들이 결성한 사진조합이다. 초대 조합장은 금옥당사진관의 김경집이 맡았으며 조합 사무소도 종로 공평동에 위치한 금옥당사진관 안에 두었다. 조합장이 조선인이었다는 점에서 경성 지역 최초의 조선인 사진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사진업조합 (寫眞業組合)
사진업조합은 1922년 사진관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성의 사진업자들이 결성한 사진조합이다. 초대 조합장은 금옥당사진관의 김경집이 맡았으며 조합 사무소도 종로 공평동에 위치한 금옥당사진관 안에 두었다. 조합장이 조선인이었다는 점에서 경성 지역 최초의 조선인 사진단체로 평가되고 있다.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금광당사진관 (金光堂寫眞館)
금광당사진관은 1925년 김광배가 서울 종로 서린동에 개설한 사진관이다. 1920년대 가장 대중적인 조선인 사진관 중의 하나였다. 관주 김광배는 조선인 사진단체인 경성인상사진연구회를 조직했을 뿐만 아니라 경성사진사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는 등 사진계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