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서오릉"
검색결과 총 6건
명릉(明陵)은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여흥민씨의 합장릉 및 제2계비 인원왕후 경주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 인원왕후는 뒷편 동원이강으로 조성되어 있다. 명릉은 정종 후릉의 체제를 따라 왕릉 석문 간소화의 표본이 된 곳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고양 서오릉’에 자리한다.
명릉 (明陵)
명릉(明陵)은 조선 제19대 국왕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 여흥민씨의 합장릉 및 제2계비 인원왕후 경주김씨의 능이다. 숙종과 인현왕후는 쌍릉, 인원왕후는 뒷편 동원이강으로 조성되어 있다. 명릉은 정종 후릉의 체제를 따라 왕릉 석문 간소화의 표본이 된 곳이다. 사적으로 지정된 ‘고양 서오릉’에 자리한다.
경릉(敬陵)은 조선 전기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덕종 경릉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자묘로 조성되었으며, 경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석물을 추가 설치하지 않아, 이후 세자묘 조성의 기준이 되었다. 소혜왕후 경릉은 왕후릉으로 조영되어 덕종릉과 대조를 이룬다. 경릉은 고양 서오릉에 있으며,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경릉 (敬陵)
경릉(敬陵)은 조선 전기 추존왕 덕종과 소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덕종 경릉은 조선에서 처음으로 세자묘로 조성되었으며, 경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석물을 추가 설치하지 않아, 이후 세자묘 조성의 기준이 되었다. 소혜왕후 경릉은 왕후릉으로 조영되어 덕종릉과 대조를 이룬다. 경릉은 고양 서오릉에 있으며, 서오릉에서 가장 먼저 조성되었다.
인현왕후(仁顯王后)는 조선 후기,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은성부부인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1681년 15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689년 폐서인이 되었다가 1694년 복위되었고, 1701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다.
인현왕후 (仁顯王后)
인현왕후(仁顯王后)는 조선 후기, 제19대 왕 숙종의 계비이다.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아버지는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이며, 어머니는 은성부부인 은진 송씨(恩津宋氏)로 송준길(宋浚吉)의 딸이다. 1681년 15세에 왕비로 책봉되었다. 1689년 폐서인이 되었다가 1694년 복위되었고, 1701년 병으로 사망하였다. 소생은 없다.
창릉(昌陵)은 조선 제8대 국왕 예종과 안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예종릉은 서쪽 언덕, 안순왕후릉은 동쪽 언덕에 조성된 동원이강형(同原異岡形)이다. 예종의 형인 덕종 경릉과 같은 고양 서오릉 내에 조성되어 있으며, 경릉과 왕릉 배치가 서로 반대이다.
창릉 (昌陵)
창릉(昌陵)은 조선 제8대 국왕 예종과 안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예종릉은 서쪽 언덕, 안순왕후릉은 동쪽 언덕에 조성된 동원이강형(同原異岡形)이다. 예종의 형인 덕종 경릉과 같은 고양 서오릉 내에 조성되어 있으며, 경릉과 왕릉 배치가 서로 반대이다.
익릉(翼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 서오릉에 있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단릉이다. 숭릉의 전례를 따라, 8칸 정자각과 재실의 공간 구성이 이루어져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의 특징을 갖는다. 창릉 · 경릉 · 명릉 · 홍릉과 함께 하나의 능역을 이루어 고양 서오릉으로 불리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익릉 (翼陵)
익릉(翼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고양 서오릉에 있는 조선 제19대 숙종의 원비 인경왕후 김씨의 단릉이다. 숭릉의 전례를 따라, 8칸 정자각과 재실의 공간 구성이 이루어져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의 특징을 갖는다. 창릉 · 경릉 · 명릉 · 홍릉과 함께 하나의 능역을 이루어 고양 서오릉으로 불리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홍릉(弘陵)은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 달성서씨의 능이다. 홍릉 조성 시 영조는 자신의 수릉으로 오른쪽을 비워 두었으나 이곳에 합장되지 못해 현재도 왕후릉 오른쪽은 빈터로 남아 있다. 홍릉은 18세기 조선왕릉 석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사적 '고양 서오릉(高陽 西五陵)'에 있다.
홍릉 (弘陵)
홍릉(弘陵)은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의 왕비 정성왕후 달성서씨의 능이다. 홍릉 조성 시 영조는 자신의 수릉으로 오른쪽을 비워 두었으나 이곳에 합장되지 못해 현재도 왕후릉 오른쪽은 빈터로 남아 있다. 홍릉은 18세기 조선왕릉 석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사적 '고양 서오릉(高陽 西五陵)'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