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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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이다. 숙종대 경신환국 이후 서인의 소장파가 훈척의 정치 개입을 옹호하는 노장파를 배척하며 청론(淸論)을 주장하는 가운데 성립되었다. 그러나 소론은 서인의 정체성이 분명하였기에 노론과 대립하면서도 국왕과 남인 견제를 위해 협력하였다. 후대로 갈수록 소론은 반(反) 노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숙종~영조대에 일시적으로 정국을 주도한 적도 있으나 대부분 비판 세력으로 존속하였다.
소론 (少論)
소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이다. 숙종대 경신환국 이후 서인의 소장파가 훈척의 정치 개입을 옹호하는 노장파를 배척하며 청론(淸論)을 주장하는 가운데 성립되었다. 그러나 소론은 서인의 정체성이 분명하였기에 노론과 대립하면서도 국왕과 남인 견제를 위해 협력하였다. 후대로 갈수록 소론은 반(反) 노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숙종~영조대에 일시적으로 정국을 주도한 적도 있으나 대부분 비판 세력으로 존속하였다.
고려후기 승려 혜정이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을 해석하여 1378년에 간행한 주석서. 불교서.
금강반야경소론찬요조현록 (金剛般若經疏論纂要助顯錄)
고려후기 승려 혜정이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을 해석하여 1378년에 간행한 주석서. 불교서.
노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로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에서 갈려 나온 당파이다. 1680년(숙종 6)의 경신환국 이후 남인에 대한 정탐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노장파 인사들이 소장파 관료들의 배척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립되었다. 노론은 격화되는 당쟁의 와중에 숙종~경종 대에 수차례 화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훈척가의 영향력과 송시열·송준길 등에서 연원한 문인 집단의 결집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회복, 확장하여 조선 말까지 조정의 주도 세력 지위를 유지하였다.
노론 (老論)
노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로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에서 갈려 나온 당파이다. 1680년(숙종 6)의 경신환국 이후 남인에 대한 정탐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노장파 인사들이 소장파 관료들의 배척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립되었다. 노론은 격화되는 당쟁의 와중에 숙종~경종 대에 수차례 화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훈척가의 영향력과 송시열·송준길 등에서 연원한 문인 집단의 결집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회복, 확장하여 조선 말까지 조정의 주도 세력 지위를 유지하였다.
강화학파는 조선 후기 학자 정제두가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중심으로 형성한 유교학파이다. 조선시대 문학, 예술 등 학문사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유산을 남겼다. 특히 이 학파는 양명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증학의 방법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고, 훈민정음·국어학·국사학·서법·문자학·문헌학 분야에서 뛰어난 논저들을 남겼다.
강화학파 (江華學派)
강화학파는 조선 후기 학자 정제두가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중심으로 형성한 유교학파이다. 조선시대 문학, 예술 등 학문사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유산을 남겼다. 특히 이 학파는 양명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증학의 방법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고, 훈민정음·국어학·국사학·서법·문자학·문헌학 분야에서 뛰어난 논저들을 남겼다.
『매옹한록』은 조선 후기 문신 박양한이 소론 계열 인물들의 일화나 경험담 등을 기록한 필기집이다. 소론 계열의 당파적 가문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며 당쟁, 임진왜란, 인조반정, 병자호란, 북벌 계획, 예론(禮論) 등에 관한 내용은 사료적 가치가 있다. 또한 사대부 일화와 함께 야담적 성향을 띠는 이야기가 다수 수록되어 조선 후기 야담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매옹한록 (梅翁閑錄)
『매옹한록』은 조선 후기 문신 박양한이 소론 계열 인물들의 일화나 경험담 등을 기록한 필기집이다. 소론 계열의 당파적 가문 의식이 강하게 드러나며 당쟁, 임진왜란, 인조반정, 병자호란, 북벌 계획, 예론(禮論) 등에 관한 내용은 사료적 가치가 있다. 또한 사대부 일화와 함께 야담적 성향을 띠는 이야기가 다수 수록되어 조선 후기 야담집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농은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추의 문집이다. 1818년(순조 18)에 편집·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16년경에 간행되었다는 설도 있다. 원집(原集) 4권, 별집(別集) 2권으로 구성된다. 교류 관계를 보여 주는 시문들 외에, 소론(少論)의 주요 인물인 윤선거와 윤증의 직계 가족인 윤추의 입장에서 본 노론·소론 당쟁(黨爭)의 일단을 담고 있는 서간문(書簡文)·상소문 등의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농은유고 (農隱遺稿)
『농은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추의 문집이다. 1818년(순조 18)에 편집·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16년경에 간행되었다는 설도 있다. 원집(原集) 4권, 별집(別集) 2권으로 구성된다. 교류 관계를 보여 주는 시문들 외에, 소론(少論)의 주요 인물인 윤선거와 윤증의 직계 가족인 윤추의 입장에서 본 노론·소론 당쟁(黨爭)의 일단을 담고 있는 서간문(書簡文)·상소문 등의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정언, 부교리,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박사정 (朴師正)
조선 후기에, 정언, 부교리,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문신 이의천이 당쟁에 관한 소차를 수록한 역사서.
박직와주의 (樸直窩奏議)
조선후기 문신 이의천이 당쟁에 관한 소차를 수록한 역사서.
조선후기 제19대 왕 숙종과 경종대의 사실(史實)을 기록한 역사서.
숙종시사 (肅宗時事)
조선후기 제19대 왕 숙종과 경종대의 사실(史實)을 기록한 역사서.
유수원은 조선 후기 정언, 태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우서(迂書)』를 집필한 문신이다. 소론 준론계 가문 출신으로 관직 생활 초반에는 벼슬살이가 평탄하지 않았다. 높은 학식과 재주를 인정받았는데, 조선의 전면적인 개혁을 주장한 『우서』는 탕평책을 추진한 영조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이조전랑의 통청권과 한림의 추천권 개혁에 영향을 주었다. 대역죄로 사형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나, ‘사민분업’과 상공업 증진을 주장한 개혁론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유수원 (柳壽垣)
유수원은 조선 후기 정언, 태천현감 등을 역임하고 『우서(迂書)』를 집필한 문신이다. 소론 준론계 가문 출신으로 관직 생활 초반에는 벼슬살이가 평탄하지 않았다. 높은 학식과 재주를 인정받았는데, 조선의 전면적인 개혁을 주장한 『우서』는 탕평책을 추진한 영조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이조전랑의 통청권과 한림의 추천권 개혁에 영향을 주었다. 대역죄로 사형을 당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나, ‘사민분업’과 상공업 증진을 주장한 개혁론으로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실학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조석여는 조선 후기에 예문관제학, 황해도관찰사, 이조판서,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소론 출신 집안에서 태어나 1846년(헌종 12)에 식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848년(헌종 14)에 참봉으로서 문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경상도암행어사를 거쳐 1866년(고종 3)에 강원도관찰사, 1869년에 황해도관찰사, 1876년(고종 13)에 형조판서, 1879년(고종 16)에 의정부 우참찬, 1883년(고종 20)에 홍문관제학, 사헌부 대사헌,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다.
조석여 (曺錫輿)
조석여는 조선 후기에 예문관제학, 황해도관찰사, 이조판서,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소론 출신 집안에서 태어나 1846년(헌종 12)에 식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848년(헌종 14)에 참봉으로서 문과 별시에 급제하였다. 1850년(철종 1) 경상도암행어사를 거쳐 1866년(고종 3)에 강원도관찰사, 1869년에 황해도관찰사, 1876년(고종 13)에 형조판서, 1879년(고종 16)에 의정부 우참찬, 1883년(고종 20)에 홍문관제학, 사헌부 대사헌,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글씨를 잘 썼다.
조선후기 『몽예집』을 저술한 문인.
남극관 (南克寬)
조선후기 『몽예집』을 저술한 문인.
건저대리는 1721년(경종 1)에 노론 일파가 연잉군을 세제로 추대하고, 대리청정권을 주고자 주동한 일련의 정치적 사건이다. 희빈 장씨가 사사되자,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인 세자(경종)가 즉위한 후를 염려한 노론은 연잉군(영조)을 세제(世弟)로 추대하였다. 아들이 없던 경종은 1721년(경종 1) 8월 세제를 책봉하였다. 10월에 노론은 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하였다. 경종은 대리청정을 허락했다가 3일 만에 환수하였다. 왕세자를 세우는 건저와 대리청정으로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이후 소론에 의한 신임옥사가 일어나 노론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
건저대리 (建儲代理)
건저대리는 1721년(경종 1)에 노론 일파가 연잉군을 세제로 추대하고, 대리청정권을 주고자 주동한 일련의 정치적 사건이다. 희빈 장씨가 사사되자,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인 세자(경종)가 즉위한 후를 염려한 노론은 연잉군(영조)을 세제(世弟)로 추대하였다. 아들이 없던 경종은 1721년(경종 1) 8월 세제를 책봉하였다. 10월에 노론은 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하였다. 경종은 대리청정을 허락했다가 3일 만에 환수하였다. 왕세자를 세우는 건저와 대리청정으로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나 이후 소론에 의한 신임옥사가 일어나 노론은 타격을 입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