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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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명삼보는 삼보에 귀명해야 한다는 불교 교리이다. 붓다에게 몸과 마음을 던져 따르는 것을 의미하며, 삼보는 불보와 법보와 승보이다. 옛 논사들이 논을 지을 때 또는 현대 사원의 불교의례에서 항상 사용하는 예불의례 가운데 삼보에 귀명할 것을 다짐한다. 당나라 법장은 대승기신론에서 귀경게를 통해 삼보에 귀명함으로써 붓다의 뛰어난 힘을 요청하고 의지하여 논을 짓는다고 하였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귀명은 신심의 극치를 나타낸다고 설명하였다.
귀명삼보 (歸命三寶)
귀명삼보는 삼보에 귀명해야 한다는 불교 교리이다. 붓다에게 몸과 마음을 던져 따르는 것을 의미하며, 삼보는 불보와 법보와 승보이다. 옛 논사들이 논을 지을 때 또는 현대 사원의 불교의례에서 항상 사용하는 예불의례 가운데 삼보에 귀명할 것을 다짐한다. 당나라 법장은 대승기신론에서 귀경게를 통해 삼보에 귀명함으로써 붓다의 뛰어난 힘을 요청하고 의지하여 논을 짓는다고 하였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귀명은 신심의 극치를 나타낸다고 설명하였다.
국왕이 승려를 초청하여 접대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
만승회 (萬僧會)
국왕이 승려를 초청하여 접대하는 종교의례. 불교의식.
『과시등록』은 1634년(인조 12)부터 1677년(숙종 3)까지 사학(四學)의 각종 과시(課試)와 지방 공도회(公都會) 등 교육과 관련된 문서를 예조 계제사(稽制司)에서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시행 세칙인 절목(節目)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서 당시의 교육 제도를 이해하기 위한 일차적인 자료가 된다. 필사본 2책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도서에 포함되어 있다.
과시등록 (課試謄錄)
『과시등록』은 1634년(인조 12)부터 1677년(숙종 3)까지 사학(四學)의 각종 과시(課試)와 지방 공도회(公都會) 등 교육과 관련된 문서를 예조 계제사(稽制司)에서 정리하여 편찬한 책이다. 시행 세칙인 절목(節目)이 다수 수록되어 있어서 당시의 교육 제도를 이해하기 위한 일차적인 자료가 된다. 필사본 2책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도서에 포함되어 있다.
사부학당은 조선시대 한성의 동·서·남·중 4개 부에 설치된 관립교육기관이다. 보통 사학이라 칭한다. 제도적으로는 성균관의 부속학교로 볼 수 있지만, 연령이나 수학 과정에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성균관은 생원·진사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사부학당은 유학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사부학당은 한성 지역의 유생을 행정 단위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관립교육기관이라는 점, 제도의 존속 기간이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교육사적 의미가 크다.
사부학당 (四部學堂)
사부학당은 조선시대 한성의 동·서·남·중 4개 부에 설치된 관립교육기관이다. 보통 사학이라 칭한다. 제도적으로는 성균관의 부속학교로 볼 수 있지만, 연령이나 수학 과정에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다만 성균관은 생원·진사를 대상으로 하는 반면, 사부학당은 유학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사부학당은 한성 지역의 유생을 행정 단위로 관리하고 교육하는 관립교육기관이라는 점, 제도의 존속 기간이 조선시대 내내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교육사적 의미가 크다.
통도사·해인사·송광사로 각각 불·법·승을 상징하는 불교건축물. 총림.
삼보사찰 (三寶寺刹)
통도사·해인사·송광사로 각각 불·법·승을 상징하는 불교건축물. 총림.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쓰는 인장(印章).
삼보인 (三寶印)
불교의 선종(禪宗)에서 쓰는 인장(印章).
순천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曹溪山)에 있는, 지눌의 수선결사(修禪結社)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신라 말에 창건되어 길상사라 하였으나,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이 수선결사를 개창한 이후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지눌 이후 16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부휴계의 종찰로 평가를 받았다. 19세기 이후 불·법·승 삼보 가운데 승보 사찰로 불린다.
조계산 송광사 (曹溪山 松廣寺)
순천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曹溪山)에 있는, 지눌의 수선결사(修禪結社)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신라 말에 창건되어 길상사라 하였으나, 고려 후기 보조국사 지눌이 수선결사를 개창한 이후 현재의 명칭으로 바꾸었다. 지눌 이후 16국사를 배출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부휴계의 종찰로 평가를 받았다. 19세기 이후 불·법·승 삼보 가운데 승보 사찰로 불린다.
조선시대 승보시(陞補試)의 합격생을 모아 성균관대사성이 연담(讌談)하던 제도.
호중 (呼中)
조선시대 승보시(陞補試)의 합격생을 모아 성균관대사성이 연담(讌談)하던 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