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시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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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부일구는 1434년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세종대왕이 이순지에게 제작을 명하여 백성들이 다니는 대로변에 설치한 대중시계이다. 해 그림자를 만드는 영침, 해 그림자를 받아 시각과 절기를 읽는 반구형의 수영면이 주요 구성품이다. 수영면이 반구형으로 오목한데, 그 모양이 ‘하늘을 우러르는[仰] 가마솥[釜] 같다’고 해서 ‘앙부’라고 불렀다. 천구상의 태양 운행을 완벽하게 재현한 기구로, 해 그림자가 드리워진 절기선과 시각선의 눈금을 읽으면 별도 계산 없이 시각과 절기를 지평환에서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간편한 기구이다.
앙부일구 (仰釜日晷)
앙부일구는 1434년에 제작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해시계이다. 세종대왕이 이순지에게 제작을 명하여 백성들이 다니는 대로변에 설치한 대중시계이다. 해 그림자를 만드는 영침, 해 그림자를 받아 시각과 절기를 읽는 반구형의 수영면이 주요 구성품이다. 수영면이 반구형으로 오목한데, 그 모양이 ‘하늘을 우러르는[仰] 가마솥[釜] 같다’고 해서 ‘앙부’라고 불렀다. 천구상의 태양 운행을 완벽하게 재현한 기구로, 해 그림자가 드리워진 절기선과 시각선의 눈금을 읽으면 별도 계산 없이 시각과 절기를 지평환에서 곧바로 파악할 수 있는 간편한 기구이다.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제작된 해시계.
앙부일구 (仰釜日晷)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제작된 해시계.
조선시대 칠정산(七政算) 내편(內篇)의 추보(推步)를 맡았던 관상감(觀象監)의 관직.
추보관 (推步官)
조선시대 칠정산(七政算) 내편(內篇)의 추보(推步)를 맡았던 관상감(觀象監)의 관직.
숭정역서는 명나라 말기에 16~17세기 유럽 천문학의 이론과 방법을 한문으로 편역하여 중국에 처음 소개한 천문학 총서이다. 중국식 역법(曆法) 체계에 맞추어 당대의 역법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시도하였으며, 주로 티코 브라헤의 우주론을 수용하였다. 숭정 연간에 서광계(徐光啟, 1562~1633)가 천문학에 밝은 서양 선교사들을 조직하여 편찬을 총괄하고 이천경(李天經, 1579~1659)이 완료하여 『숭정역서라는 이름을 받았다. 명나라 말기에는 실용되지 못하고 청나라 초기에 『서양신법역서』로 개칭되어 첫 번째 시헌력법서로 사용되었다.
숭정역서 (崇禎曆書)
숭정역서는 명나라 말기에 16~17세기 유럽 천문학의 이론과 방법을 한문으로 편역하여 중국에 처음 소개한 천문학 총서이다. 중국식 역법(曆法) 체계에 맞추어 당대의 역법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시도하였으며, 주로 티코 브라헤의 우주론을 수용하였다. 숭정 연간에 서광계(徐光啟, 1562~1633)가 천문학에 밝은 서양 선교사들을 조직하여 편찬을 총괄하고 이천경(李天經, 1579~1659)이 완료하여 『숭정역서라는 이름을 받았다. 명나라 말기에는 실용되지 못하고 청나라 초기에 『서양신법역서』로 개칭되어 첫 번째 시헌력법서로 사용되었다.
서양신법역서는 명나라 말기에 편찬된 『숭정역서』를 청나라 초기에 탕약망이 재편하고 몇 가지 서종을 추가하여 첫 번째 시헌력법서로 삼은 천문학 총서이다. 왕조가 바뀌어 불가피하게 명칭을 바꾸었지만, 『숭정역서』 각판(刻板)을 그대로 사용하여 보각한 증보본이다. 강희역옥 후에는 명칭에서 ‘서양’을 빼고 약간의 내용 변동이 있었고, 이때도 기존의 각판을 그대로 쓰고 보각하였다. 역법서로서 기능이 다한 후인 건륭제 때 서법 도입 과정의 보존을 위해 역서를 재정리하고 ‘曆’을 ‘算’으로 피휘하여 『사고전서』에 수록한 것이 『신법산서』이다.
서양신법역서(신법산서) (西洋新法曆書(新法算書))
서양신법역서는 명나라 말기에 편찬된 『숭정역서』를 청나라 초기에 탕약망이 재편하고 몇 가지 서종을 추가하여 첫 번째 시헌력법서로 삼은 천문학 총서이다. 왕조가 바뀌어 불가피하게 명칭을 바꾸었지만, 『숭정역서』 각판(刻板)을 그대로 사용하여 보각한 증보본이다. 강희역옥 후에는 명칭에서 ‘서양’을 빼고 약간의 내용 변동이 있었고, 이때도 기존의 각판을 그대로 쓰고 보각하였다. 역법서로서 기능이 다한 후인 건륭제 때 서법 도입 과정의 보존을 위해 역서를 재정리하고 ‘曆’을 ‘算’으로 피휘하여 『사고전서』에 수록한 것이 『신법산서』이다.
역주(曆註)는 전통적인 역서에서 천문학적 내용을 수식하는 소위 비과학적이고 점성학적인 길흉의 사항이다. 전통적인 역서는 삭망, 상하현, 24기의 시각, 일월식 등을 알려주는 천문학적 역법, 그리고 연월일과 방위(方位)의 길흉화복이나 금기를 표시하는 점성학(占星學)적인 역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역주는 시간과 공간의 길흉을 도출하는 데 관계하는 역서의 모든 사항을 가리킨다.
역주 (曆註)
역주(曆註)는 전통적인 역서에서 천문학적 내용을 수식하는 소위 비과학적이고 점성학적인 길흉의 사항이다. 전통적인 역서는 삭망, 상하현, 24기의 시각, 일월식 등을 알려주는 천문학적 역법, 그리고 연월일과 방위(方位)의 길흉화복이나 금기를 표시하는 점성학(占星學)적인 역주로 구성된다. 일반적으로 역주는 시간과 공간의 길흉을 도출하는 데 관계하는 역서의 모든 사항을 가리킨다.
12시 96각법은 하루의 길이를 12시와 96각으로 균등하게 분할하는 시제이다. 매 시는 8각이며 1각은 15분이다. 서양 천문 역산학 지식을 바탕으로 편찬된 『시헌력』의 반포와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는 1653년에 전래되었고, 1789년에 『시헌력』 체제에 따른 시제 운용 매뉴얼인 『신법누주통의(新法漏籌通義)』가 편찬되었다.
12시 96각법 (十二時 九十六刻法)
12시 96각법은 하루의 길이를 12시와 96각으로 균등하게 분할하는 시제이다. 매 시는 8각이며 1각은 15분이다. 서양 천문 역산학 지식을 바탕으로 편찬된 『시헌력』의 반포와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는 1653년에 전래되었고, 1789년에 『시헌력』 체제에 따른 시제 운용 매뉴얼인 『신법누주통의(新法漏籌通義)』가 편찬되었다.
중수대명력은 1171년(명종 1) 금나라의 조지미가 양급의 『대명력(大明曆)』을 중수하여 편찬한 역법이다. 요나라 가준의 『대명력』과 북송의 『기원력(紀元曆)』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금에서는 1182년(명종 12)부터 1234년(고종 21)까지 사용되었다. 또한 몽골은 1215년(고종 2)부터 이 역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몽골을 이은 원에서는 『수시력(授時曆)』이 시행되기 전인 1280년까지 사용되었다.
중수대명력 (重修大明曆)
중수대명력은 1171년(명종 1) 금나라의 조지미가 양급의 『대명력(大明曆)』을 중수하여 편찬한 역법이다. 요나라 가준의 『대명력』과 북송의 『기원력(紀元曆)』의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금에서는 1182년(명종 12)부터 1234년(고종 21)까지 사용되었다. 또한 몽골은 1215년(고종 2)부터 이 역법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몽골을 이은 원에서는 『수시력(授時曆)』이 시행되기 전인 1280년까지 사용되었다.
명시력(明時曆)은 1898년(광무 2)부터 1908년(융희 2)까지 간행된 대한제국의 역서이다. 고종 34년인 1897년(광무 1)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역서의 이름도 종래의 『시헌력(時憲曆)』에서 『명시력』으로 바꾸었다. 『명시력』은 대한제국에서 1898년부터 1908년까지 11년간 사용된 역서이다.
명시력 (明時曆)
명시력(明時曆)은 1898년(광무 2)부터 1908년(융희 2)까지 간행된 대한제국의 역서이다. 고종 34년인 1897년(광무 1)에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연호를 광무(光武)로 고치고 역서의 이름도 종래의 『시헌력(時憲曆)』에서 『명시력』으로 바꾸었다. 『명시력』은 대한제국에서 1898년부터 1908년까지 11년간 사용된 역서이다.
허원은 조선 후기 숙종·경종 시대에 관상감의 관원으로 활동한 중인(中人) 출신 천문학자이다. 4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행성 운행 계산법을 비롯한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방법을 배웠다. 이를 통해 조선 관상감의 시헌력 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18세기 조선 천문학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허원 (許遠)
허원은 조선 후기 숙종·경종 시대에 관상감의 관원으로 활동한 중인(中人) 출신 천문학자이다. 4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행성 운행 계산법을 비롯한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방법을 배웠다. 이를 통해 조선 관상감의 시헌력 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18세기 조선 천문학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