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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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신문왕의 왕비.
신문왕비 김씨 (神文王妃 金氏)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신문왕의 왕비.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1대 신문왕의 능. 왕릉.
경주 신문왕릉 (慶州 神文王陵)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1대 신문왕의 능. 왕릉.
감은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사찰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신문왕이 창건하였다. 682년(신문왕 2)에 신문왕이 부왕 문무왕의 뜻을 이어 창건하였으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성전사원으로 기능하였다. 현재는 동서 삼층 석탑이 남아 있다.
경주 감은사 (慶州 感恩寺)
감은사는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에 있는 사찰로,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신문왕이 창건하였다. 682년(신문왕 2)에 신문왕이 부왕 문무왕의 뜻을 이어 창건하였으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성전사원으로 기능하였다. 현재는 동서 삼층 석탑이 남아 있다.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는 경주시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통일신라 시대의 물품이다. 사리구의 제작 연대는 감은사가 창건된 682년(신문왕 2)과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사리구는 사리병, 사리기, 사리 외함 삼중구조로 있다. 사리를 담은 수정제 사리병에서는 사리 1과가 발견되었다. 사리병을 모시는 몸체인 사리기와 사리 외함은 모두 금동제이다. 사리구의 이러한 삼중구조는 통일신라 시대에 자주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이 사리구는 통일신라 왕실 미술과 불교 공예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感恩寺址 西 三層石塔 舍利莊嚴具)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는 경주시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통일신라 시대의 물품이다. 사리구의 제작 연대는 감은사가 창건된 682년(신문왕 2)과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사리구는 사리병, 사리기, 사리 외함 삼중구조로 있다. 사리를 담은 수정제 사리병에서는 사리 1과가 발견되었다. 사리병을 모시는 몸체인 사리기와 사리 외함은 모두 금동제이다. 사리구의 이러한 삼중구조는 통일신라 시대에 자주 볼 수 있는 형식이다. 이 사리구는 통일신라 왕실 미술과 불교 공예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사는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이다. 대체로 실무직 중에서는 최고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정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관청에 따라 대사직의 숫자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2명 정도가 일반적이다. 또 임명할 수 있는 관등 역시 관청별로 예외가 있지만, 대체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이다.
대사 (大舍)
대사는 통일신라시대, 685년(신문왕 5)에 제정된 5등관제에서 3등관에 해당하는 중간 관직이다. 대체로 실무직 중에서는 최고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그 정원이 많지 않은 편이다. 관청에 따라 대사직의 숫자가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2명 정도가 일반적이다. 또 임명할 수 있는 관등 역시 관청별로 예외가 있지만, 대체로 사지에서 나마까지이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황금서당 보기감을 역임한 장수.
김영윤 (金令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황금서당 보기감을 역임한 장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신문왕 납비 때 시비를 궁내로 모셔오는 임무를 수행한 관리.
길숙 (吉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신문왕 납비 때 시비를 궁내로 모셔오는 임무를 수행한 관리.
김흠돌은 신라 중대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였다. 문무왕대에 장군직을 역임하였으며, 신문왕이 태자였을 때 그의 장인이 되었다. 그러나 뒤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죽임을 당했고, 자신의 딸도 이 때문에 출궁되었다.
김흠돌 (金欽突)
김흠돌은 신라 중대의 진골 귀족 출신 관료였다. 문무왕대에 장군직을 역임하였으며, 신문왕이 태자였을 때 그의 장인이 되었다. 그러나 뒤에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되어 죽임을 당했고, 자신의 딸도 이 때문에 출궁되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낭당대감을 역임한 군인.
김흠운 (金歆運)
삼국시대 신라의 낭당대감을 역임한 군인.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일곱째 아들인 왕자.
김개원 (金愷元)
삼국시대 신라 제29대 태종무열왕의 일곱째 아들인 왕자.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신충봉성사와 관련된 노비.
신충 (信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신충봉성사와 관련된 노비.
봉성사(奉聖寺)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신문왕 또는 제35대 경덕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이 사찰은 신라에서 성전사원(成典寺院)으로 그 위상이 높았다. 사찰은 조선 중기까지 존속하였다.
경주 봉성사 (慶州 奉聖寺)
봉성사(奉聖寺)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신문왕 또는 제35대 경덕왕 때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이 사찰은 신라에서 성전사원(成典寺院)으로 그 위상이 높았다. 사찰은 조선 중기까지 존속하였다.
통일신라의 제31대 왕인 신문왕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왕.
정신대왕 (淨神大王)
통일신라의 제31대 왕인 신문왕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왕.
신라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이견대가 (利見臺歌)
신라시대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가요.
삼국시대 신라의 제30대 문무왕의 왕비.
자의왕후 (慈儀王后)
삼국시대 신라의 제30대 문무왕의 왕비.
달구벌 천도 계획은 689년 신라의 신문왕이 도읍지를 현재의 대구광역시인 달구벌로 옮기려 했던 계획이다. 신문왕은 경주 지역의 진골귀족세력을 벗어나 새 수도 건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달구벌이 후보지가 된 것은 팔공산 등 큰 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요건과 농경지대에다가 낙동강을 통한 물자수송이 편리하다는 경제적 측면 외에도 경주와 가깝고 왕실세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은 9주 5소경의 정비 이후 결정, 준비가 진행되다가 막대한 비용 부담과 진골귀족세력의 반발로 중단되었다.
달구벌 천도 계획 (達句伐 遷都 計劃)
달구벌 천도 계획은 689년 신라의 신문왕이 도읍지를 현재의 대구광역시인 달구벌로 옮기려 했던 계획이다. 신문왕은 경주 지역의 진골귀족세력을 벗어나 새 수도 건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천도를 추진하였다. 달구벌이 후보지가 된 것은 팔공산 등 큰 산이 있어 방어에 유리하고 교통이 편리한 지리적 요건과 농경지대에다가 낙동강을 통한 물자수송이 편리하다는 경제적 측면 외에도 경주와 가깝고 왕실세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계획은 9주 5소경의 정비 이후 결정, 준비가 진행되다가 막대한 비용 부담과 진골귀족세력의 반발로 중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