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심정"
검색결과 총 15건
1527년(중종 22) 3월 쥐를 잡아 동궁(東宮: 뒤의 인종)을 저주한 사건.
작서의 변 (灼鼠의 變)
1527년(중종 22) 3월 쥐를 잡아 동궁(東宮: 뒤의 인종)을 저주한 사건.
조선 전기에, 승정원주서, 이조좌랑, 승문원판교 등을 역임한 문신.
이문건 (李文楗)
조선 전기에, 승정원주서, 이조좌랑, 승문원판교 등을 역임한 문신.
1521년(중종 16)에 일어난 안처겸(安處謙) 등의 옥사.
신사무옥 (辛巳誣獄)
1521년(중종 16)에 일어난 안처겸(安處謙) 등의 옥사.
조선 전기에, 안처겸 등이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조작하여 신사무옥을 일으키고 30년간 권세를 누린 문신.
송사련 (宋祀連)
조선 전기에, 안처겸 등이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사실을 조작하여 신사무옥을 일으키고 30년간 권세를 누린 문신.
조선 전기에, 경기도관찰사,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심수경 (沈守慶)
조선 전기에, 경기도관찰사, 대사헌,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일승·대원 등이 창건한 사찰.
모악산 대원사 (母岳山 大院寺)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母岳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일승·대원 등이 창건한 사찰.
조선 전기에, 지평, 정언,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심언광 (沈彦光)
조선 전기에, 지평, 정언,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부좌윤,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유청 (李惟淸)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부좌윤,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이충건 (李忠楗)
조선 전기에, 사간원정언, 이조좌랑, 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부좌윤,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손주 (孫澍)
조선 전기에, 대사헌, 한성부좌윤,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기묘사화로 유배된 스승 김식의 도주를 도운 죄로 형벌에 처해졌다가 사면된 이후에는 후진 양성에 힘쓴 학자.
이중 (李中)
조선 전기에, 기묘사화로 유배된 스승 김식의 도주를 도운 죄로 형벌에 처해졌다가 사면된 이후에는 후진 양성에 힘쓴 학자.
조선 전기에, 내자시주부, 부교리,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이숙복 (李叔福)
조선 전기에, 내자시주부, 부교리,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사간원정언, 병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심사손 (沈思遜)
조선 전기에, 예조좌랑, 사간원정언, 병조정랑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김식의 아들로 사면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쓴 학자이다. 기묘사화 이후 부친의 망명으로 추국령이 내려지자, 동생 김덕순과 함께 행적을 감추고 지내다가, 1538년(중종 33) 신원(伸寃)된 뒤 집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윤근수(尹根壽, 1537∼1616) 등 많은 명사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1552년(명종 7) 향년 53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부친 김식이 도학에 있어서 조광조와 쌍벽을 이룰 만큼 명성이 높았는데, 그 역시 부친으로부터 도학에 대한 수준 높은 소양을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덕수 (金德秀)
조선 전기에 기묘사화로 화를 입은 김식의 아들로 사면된 이후 후학 양성에 힘쓴 학자이다. 기묘사화 이후 부친의 망명으로 추국령이 내려지자, 동생 김덕순과 함께 행적을 감추고 지내다가, 1538년(중종 33) 신원(伸寃)된 뒤 집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윤근수(尹根壽, 1537∼1616) 등 많은 명사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1552년(명종 7) 향년 53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부친 김식이 도학에 있어서 조광조와 쌍벽을 이룰 만큼 명성이 높았는데, 그 역시 부친으로부터 도학에 대한 수준 높은 소양을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홍우세는 조선 전기 중종 대 토산현감을 지낸 문신이다. 중종 대 익명 게시문으로 사림들을 비방한 일에 심정·심사순 부자와 같은 일당으로 몰리면서 국문을 당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감옥에 갇혀 23차례나 형신을 받으면서도 무고함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억울함을 풀지 못하였다. 당시 사신(史臣)은 허항과 김미의 개인적 다툼 때문에 홍우세를 궁지에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홍우세 (洪佑世)
홍우세는 조선 전기 중종 대 토산현감을 지낸 문신이다. 중종 대 익명 게시문으로 사림들을 비방한 일에 심정·심사순 부자와 같은 일당으로 몰리면서 국문을 당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감옥에 갇혀 23차례나 형신을 받으면서도 무고함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억울함을 풀지 못하였다. 당시 사신(史臣)은 허항과 김미의 개인적 다툼 때문에 홍우세를 궁지에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