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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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태안군수, 울산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양기재유고』, 『양기재산고』 등을 저술한 문신.
안서우 (安瑞羽)
조선 후기에, 태안군수, 울산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양기재유고』, 『양기재산고』 등을 저술한 문신.
표준 양기는 부피의 통일을 위하여 표준 혹은 기준이 되도록 만든 용기이다. 홉·되·말·섬 등의 단위가 표준 양기로 사용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 초기부터 사용되었으나 조선 전기 이전의 것은 남아있지 않다. 표준 양기의 부피는 1되[升]가 삼국시대에는 약 0.2ℓ, 고려시대에는 약 0.34ℓ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대에는 영조척을 기준으로 다시 정하여 1되가 약 0.6ℓ정도로 오늘날의 1/3이다. 표준 양기에는 부정을 막기 위해 관인을 하고 모서리에 철심을 박아 형태의 변형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사회의 발전과 함께 표준 양기도 변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표준 양기 (標準 量器)
표준 양기는 부피의 통일을 위하여 표준 혹은 기준이 되도록 만든 용기이다. 홉·되·말·섬 등의 단위가 표준 양기로 사용되었다. 문헌에 의하면 삼국시대 초기부터 사용되었으나 조선 전기 이전의 것은 남아있지 않다. 표준 양기의 부피는 1되[升]가 삼국시대에는 약 0.2ℓ, 고려시대에는 약 0.34ℓ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대에는 영조척을 기준으로 다시 정하여 1되가 약 0.6ℓ정도로 오늘날의 1/3이다. 표준 양기에는 부정을 막기 위해 관인을 하고 모서리에 철심을 박아 형태의 변형을 방지하고자 하였다. 사회의 발전과 함께 표준 양기도 변화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택영이 조선시대 개성출신의 인물 91명의 행적을 모아 1896년에 간행한 전기.
숭양기구전 (崧陽耆舊傳)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김택영이 조선시대 개성출신의 인물 91명의 행적을 모아 1896년에 간행한 전기.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문주 (文州)
함경남도 문천 지역의 옛 지명.
고려 말에 중국에서 귀화한 양기(楊起)를 비롯하여 4세의 『청주양씨세고』 책판.
청주양씨세고 목판 (淸州梁氏世稿 木板)
고려 말에 중국에서 귀화한 양기(楊起)를 비롯하여 4세의 『청주양씨세고』 책판.
구식례(구일식의)는 일식이나 월식이 있을 때, 잠식된 해와 달을 구하기 위해 대궐과 중앙 및 지방 관청에서 실행한 재난 의례이다. 근대 이전에 천문학적 변고인 일식과 월식은 하늘이 왕에게 내리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경고로 여겨졌다. 따라서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는 일식과 월식을 해소하기 위해 왕이 직접 주술적인 구식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천문학의 발달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지면서 일월식은 천변재이에서 자연적인 사건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고, 구식례도 왕이 더 이상 직접 거행하지 않는, 형식적인 의례로 전락하였다.
구식례(구일식의) (救食禮(求日食儀))
구식례(구일식의)는 일식이나 월식이 있을 때, 잠식된 해와 달을 구하기 위해 대궐과 중앙 및 지방 관청에서 실행한 재난 의례이다. 근대 이전에 천문학적 변고인 일식과 월식은 하늘이 왕에게 내리는 도덕적이고 정치적인 경고로 여겨졌다. 따라서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에는 일식과 월식을 해소하기 위해 왕이 직접 주술적인 구식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나 천문학의 발달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해지면서 일월식은 천변재이에서 자연적인 사건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고, 구식례도 왕이 더 이상 직접 거행하지 않는, 형식적인 의례로 전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