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양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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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이승은 조선 후기 공조좌랑, 영평현령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학문에 매진하여 윤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설에 뛰어나 낙론 계열을 이끌었 김창협과 양명학을 대표하는 정제두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과 논쟁하였다.
민이승 (閔以升)
민이승은 조선 후기 공조좌랑, 영평현령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학문에 매진하여 윤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설에 뛰어나 낙론 계열을 이끌었 김창협과 양명학을 대표하는 정제두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과 논쟁하였다.
강화학파는 조선 후기 학자 정제두가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중심으로 형성한 유교학파이다. 조선시대 문학, 예술 등 학문사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유산을 남겼다. 특히 이 학파는 양명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증학의 방법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고, 훈민정음·국어학·국사학·서법·문자학·문헌학 분야에서 뛰어난 논저들을 남겼다.
강화학파 (江華學派)
강화학파는 조선 후기 학자 정제두가 강화도에서 양명학을 중심으로 형성한 유교학파이다. 조선시대 문학, 예술 등 학문사에서 독특하고 창의적인 유산을 남겼다. 특히 이 학파는 양명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증학의 방법론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고, 훈민정음·국어학·국사학·서법·문자학·문헌학 분야에서 뛰어난 논저들을 남겼다.
남노성은 조선 후기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역임한 문신이다.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라고 일컬어지는 남언경의 증손이다. 동부승지부터 도승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승지직을 맡았으며 대사간(大司諫)에 누차 제수되었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의 참의 및 호조, 병조, 공조 등의 참판을 역임하였으며, 여러 차례 사신으로 북경에 파견되었다. 외직으로는 안동부사, 함경도관찰사, 개성유수 등을 지냈다.
남노성 (南老星)
남노성은 조선 후기 청요직(淸要職)을 두루 역임한 문신이다.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라고 일컬어지는 남언경의 증손이다. 동부승지부터 도승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승지직을 맡았으며 대사간(大司諫)에 누차 제수되었다. 이조, 호조, 예조, 병조의 참의 및 호조, 병조, 공조 등의 참판을 역임하였으며, 여러 차례 사신으로 북경에 파견되었다. 외직으로는 안동부사, 함경도관찰사, 개성유수 등을 지냈다.
일제강점기 때, 계명의숙을 설립하였으며, 『해경당수초』 등을 저술한 학자.
이건승 (李建昇)
일제강점기 때, 계명의숙을 설립하였으며, 『해경당수초』 등을 저술한 학자.
정제두는 조선 후기 『학변』, 『존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49년(인조 27)에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에 사망하였다.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 추곡(楸谷)이다. 정제두는 조선에 전래된 양명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전개하였다. 당시의 도학은 양명학을 이단으로 배척했으나, 정제두는 양명학을 체계화하여 양명학파를 확립하였다. 그의 『학변(學辨)』, 『존언(存言)』은 양명학의 치양지설과 지행합일설을 받아들여 저술한 것이다.
정제두 (鄭齊斗)
정제두는 조선 후기 『학변』, 『존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49년(인조 27)에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에 사망하였다.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 추곡(楸谷)이다. 정제두는 조선에 전래된 양명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전개하였다. 당시의 도학은 양명학을 이단으로 배척했으나, 정제두는 양명학을 체계화하여 양명학파를 확립하였다. 그의 『학변(學辨)』, 『존언(存言)』은 양명학의 치양지설과 지행합일설을 받아들여 저술한 것이다.
조선후기 「의주왕문답」을 저술한 문인. 학자.
이광신 (李匡臣)
조선후기 「의주왕문답」을 저술한 문인. 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