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초 ()

목차
관련 정보
제주의 한란
제주의 한란
식물
생물
국가유산
난초과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
국가자연유산
지정 명칭
제주의 한란(濟州의 寒蘭)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생물과학기념물/유전학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천연기념물(1967년 07월 18일 지정)
소재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난초과에 속하는 식물의 총칭.
내용

일반적으로는 난이라고 한다. 단자엽식물에 속하는 난초과는 국화과 · 콩과 다음으로 큰 과로 땅에서 자라는 것, 나무나 바위표면에 붙어서 자라는 것, 다른 식물에 기생하는 것 등 다양하다. 세계적으로는 약 450속 1만5천 종이 분포되어 있는데, 우리 나라에는 39속 84종이 자라고 있다. 난초는 동양란과 서양란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산지와는 관계없이 편의상 부르는 것으로, 서양에서 육종되어 수입된 난은 서양란이라 하고, 한국 · 중국 · 일본에서 야생하는 온대성 심비디움(cymbidium)과 석곡 · 풍란의 원종은 동양란이라 한다.

동양란은 좁게는 온대성 심비디움만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이것은 1963년에 대만과 일본의 난애호가들이 만났을 때, 공통의 명칭으로 통용하자는 제의에서 붙여진 이름일 뿐, 식물학적으로는 관련이 없다.

형태는 잎은 단엽이고 꽃은 양성인데 간혹 단성도 있다. 화피(花被)는 6개가 내외로 배열되어 있는데 모두 꽃잎같이 생겨서 아름답다. 순판(脣瓣)은 본디 원대를 향하였으나, 자방이 180°로 돌기 때문에 밖을 향한다.

본디 6개였던 수술은 3개로 퇴화하였고, 1개의 암술은 암술머리가 2∼3개로 갈라져 있다. 꽃가루는 덩어리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수술과 암술대는 합쳐져서 예주를 형성한다.

난 재배의 역사는 중국이 가장 길어 3천년의 난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난문화는 난이라는 공통적 이름 아래 전혀 다른 두 가지의 식물이 군자의 이미지를 지니고 역사를 이어왔다.

현재 우리가 난이라고 하는 온대성 심비디움의 재배는 10세기경부터였고, 그 이전에는 국화과 식물인 향등골나물을 난이라고 하였다.

중국 고대의 난, 즉 향등골나물은 서기전 8세기까지는 한(蕑)이라고 불렸는데 그 잎모양이 마란(馬蘭)과 비슷하다는 데서 난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10세기 이후에는 온대성 심비디움에게 그 이름을 빼앗기게 되었다. 이 식물은 도량향(都梁香) · 수향(水香) · 향수란(香水蘭) · 여란(女蘭) · 향초(香草) · 연미향(燕尾香) · 대택란(大澤蘭) · 성두초(省頭草) · 해아국(孩兒菊) · 천금초(千金草) 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향등골나물은 잎과 꽃에서 강한 향기를 풍기는 향초로서 충독을 막거나 액을 쫓는 데 쓰였으며, 꽃을 꺾어서 구애의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또한 더운 물에 넣어서 목욕을 하기도 하고, 가공하여 음식물에 첨가하거나 향합에 넣어서 옷에 차기도 하였다.

이 식물이 군자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덕이 청결한 군자의 성품을 나타내기 위하여 향초를 패용하기 시작한 데서 유래되었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의 수로왕이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許黃玉)과 그 일행을 맞이할 때 난초로 만든 마실 것과 혜초로 만든 술을 대접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 고려 중기의 김부식(金富軾)의 「임진유감(臨津有感)」, 김극기(金克己)의 「유감(有感)」을 비롯하여 이규보(李奎報)의 난에 관한 많은 시구(詩句)들과, 한말에 김정희(金正喜)가 발견하고자 찾아 헤매다가 “우리 나라에는 진란이 없다. 다만 그와 비슷한 것이 있을 뿐이다.”라고 토로한 진란도 바로 이 식물을 가리키는 것이다.

매화 · 국화 ·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문인화의 소재가 된 온대성 심비디움은 10세기경에 재배된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도곡(陶穀)이 지은 『청이록(淸異錄)』에 “난은 비록 꽃 한송이가 피기는 하나 그 향기는 실내에 가득차서 사람을 감싸고 열흘이 되어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강남 사람들은 난을 향조(香祖)로 삼는다.”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이것은 분명히 한줄기에 꽃 한송이가 피는 춘란류를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송의 황정견(黃庭堅)이 『수죽기(脩竹記)』에서 “한줄기에 꽃 한송이가 피고 향기가 많은 것은 난이고, 한 줄기에 예닐곱송이가 피면서 향기가 적은 것은 혜(蕙)이다.”라고 한 것도 오늘날의 분류와 같다.

이 식물을 우리 나라 사람이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기로 추정된다. 고려 중기의 난에 관한 시구들은 향등골나물과 난의 구별이 확연하지 않다.

『역옹패설』에 “일찍이 여항(餘杭)에 객으로 머물러 있을 적에 어떤 사람이 난을 분에 심어서 선물로 주었다. 이것을 서안 위에 놓아두었는데, 한참 손님을 접대하고 일을 처리하는 동안에는 그 난이 향기로운 줄을 몰랐다가 밤이 깊어 고요히 앉았노라니 달은 창 앞에 휘영청 밝고 그 향기가 코를 찌르는 듯 하여 맑고 그윽한 향기를 사랑할 만하고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음을 느꼈다.”라는 구절이 있다.

그리고 어머니가 난분을 깨뜨린 태몽을 꾸고 낳았기에 정몽주(鄭夢周)의 초명을 몽란(夢蘭)이라 하였다는 기록 등에 등장하는 난은 오늘날의 난으로 추측된다.

고려 말 우리 나라의 사신이 원나라를 빈번히 다녀오고, 원나라에 가서 벼슬도 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볼 때 이 시대에 우리 나라에서 온대성 심비디움을 재배하였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고려 말의 이거인(李居仁)은 난을 재배한 것으로 유명하고, 조선 초의 강희안(姜希顔)은 우리 나라 자생란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사람으로 꼽을 수 있다.

강희안은 안사형(安士亨)과 더불어 화목에 대한 안목이 탁월하였던 사람으로 저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 난을 심자(深紫) · 담자(淡紫) · 진홍 · 담홍 · 황란 · 백란 · 벽란 · 녹란 · 어타(魚鮀) · 금전(金錢) 등으로 분류하고 중국의 옛 기록을 소개하면서 재배법을 논하였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는 난 · 혜의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분에 옮긴 뒤에 잎이 점점 짧아지고 향기도 좋지 않아 국향(國香)의 뜻을 아주 잃고 있다.

그러므로 꽃을 보는 사람들이 심히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호남 연해의 모든 산에서 나는 것은 품종이 아름답다.”라고 하여 자생란에 대한 관심을 표하였다.

『임원경제지』에서는 난을 자류 17종, 백류 24종, 잡류 14종 등 모두 55종으로 분류한 외에 우리 나라 자생란에 대한 것과, 대마도를 통하여 중국 · 일본의 난이 수입되는 경로 등을 밝혔다.

우리 나라 사람으로 난의 육종에 최초로 성공한 사람은 영친왕으로서 창경(昌慶)과 창방(昌房)의 두 품종을 개발하였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우리 나라에서도 조직배양이 가능해져서 좋은 품종을 대량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신품종도 육종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애호되는 난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보춘화속:아열대 · 열대산인 대형종과 소형종인 온대성 심비디움이 있는데 특히 온대성 심비디움은 향기가 맑고 잎의 모양이 다양하여 일찍부터 국화 · 매화 ·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의 춘란과 한란이 이에 속한다. 아열대 · 열대산은 꽃이 크고 화려하나 향기가 있는 품종이 드물다.

② 석란속:옥수숫대 모양의 줄기 마디마디에 꽃이 피는 노빌계와 원통형 줄기의 끝, 또는 위로부터 2, 3마디 아래의 잎 사이에서 나온 꽃대에 10∼30송이의 꽃이 피는 덴팔계가 있다.

우리 나라의 남해안과 남부 도서지방에서 자라는 석곡은 노빌계에 속하는 품종으로 흰색 또는 분홍색의 꽃이 5, 6월경에 피며 미향이 있다.

③ 대엽풍란속:우리 나라의 제주도 · 홍도 등 남부지역에서 자라는 나도풍란이 이에 속한다. 나도풍란은 우리 나라 착생란의 대표적인 품종으로 습윤하고 온화한 바람이 불어오는 지대의 나무줄기 또는 바위에 붙어 산다. 잎의 길이는 3∼15㎝, 너비는 1.5∼2.5㎝ 정도이고 백록색의 꽃이 4, 5월 사이에 4∼10송이 정도 피는데 향기가 좋다.

④ 소엽풍란속: 전라남도 거문도, 경상남도 비진도 등 남해안의 도서지방에서 자라는 풍란이 이에 속한다. 풍란은 환경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잎의 길이는 5∼10㎝, 너비는 6∼8㎜로 3, 4층으로 나며 4∼8㎝의 가는 꽃대에서 순백색의 꽃이 피는데 향기가 좋다.

외국에서 육종되어 도입된 종류로는 캐틀레아속 · 파피오페딜룸속 · 온시디움속 등이 있는데 화려한 아름다움이 있어 많이 재배되고 있다. 이 밖에 우리 나라에서 야생하는 새우난초 · 개불알꽃 · 사철란 · 타래난초 등에 대한 애호도도 높아가고 있다.

난초는 사군자의 하나로 예로부터 시와 그림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고 있다. 문인화로서 묵란화가 우리 나라에 도입된 것은 우리 나라에서 난이 재배되기 시작한 고려 말기로 추정되는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조선 초 강세황(姜世晃)의 「필란도(筆蘭圖)」가 있다.

이 밖에 김정희 · 이하응(李昰應) · 김응원(金應元) · 민영익(閔泳翊) 등은 묵란화의 대가들이다. 난시를 남긴 이로는 김부식 · 김극기 · 이규보 · 정몽주 · 정도전(鄭道傳) · 권근(權近) · 이숭인(李崇仁) · 최경창(崔慶昌) · 신위(申緯) 등이 있다.

난초는 또한 자손의 번창과 관련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 경기도지방에서는 난초꽃이 번창하면 그 집에 식구가 는다는 속신이 전하여진다. 충청북도지방에는 꿈에 난초가 대나무 위에 나면 자손이 번창하고 난초꽃이 피면 미인을 낳는다는 속신이 전하여진다.

난초와 관련되는 속담으로는 ‘난초 불 붙으니 혜초 탄식한다.’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동류의 괴로움과 슬픔을 같이한다는 뜻이다.

참고문헌

『삼국유사』
『파한집(破閑集)』
『보한집(補閑集)』
『백운소설(白雲小說)』
『옹패설(翁稗說)』
『목은집(牧隱集)』
『포은집(圃隱集)』
『야은집(冶隱集)』
『도은집(陶隱集)』
『삼봉집(三峰集)』
『양촌집(陽村集)』
『동문선(東文選)』
『시경집주(詩經集注)』
『공자가어(孔子家語)』
『설원(說苑)』
『초사집주(楚辭集注)』
『예기(禮記)』
『연감류함(淵鑑類函)』
『본초강목(本草綱目)』
『삼한시귀감(三韓詩龜鑑)』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동의보감(東醫寶鑑)』
『양화소록(養花小錄)』
『산림경제(山林經濟)』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대한식물도감』(이창복, 향문사, 1982)
『속담사전』(이기문, 민중서관, 196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