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계명의숙을 설립하였으며, 『해경당수초』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생애와 활동사항
1910년(순종 4)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합병되자 정원하(鄭元夏)의 뒤를 따라 만주의 회인현(懷仁縣)으로 망명했다. 망명길에 개성에 거주하는 홍문관 시강(弘文館侍講) 왕성순(王性淳)의 집에 10일 정도 머물렀고, 왕성순의 스승 창강(滄江) 김택영(金澤榮) 또한 이건승과 교유가 있었다.
한편 이건승은 이건창 · 이건방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정국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또 을사조약이 강압적으로 체결되자 홍승헌(洪承憲) · 정원하(鄭元夏)와 함께 자결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때에 황현에게 낸 편지에서 “자신은 어리석고 미련해 구차하게 살고 있다.”고 자조적인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또 황종희(黃宗羲)의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의 진보적 사상에 공감했고, 이건방과 함께 담원(薝園) 정인보(鄭寅普)의 스승으로서 양명학 사상을 그에게 전수했다.
평가
한편, 이건승은 정인보의 글을 평가해, 명나라의 귀유광(歸有光)을 닮았다고 하기도 했다. 둘의 절친함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건승은 의고문(擬古文)을 배격하고 정통 고문을 높이 평가했다. 또 당시 선비들이 문장을 쓰는 태도를 평가하기를 “세상은 끝장이 나서, 고문 공부를 잘못으로 여기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저서
참고문헌
- 『담원문록(擔園文錄)』
- 『강화학(江華學) 최후의 광경』(민영규, 우반,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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